몇년 전 그는 다음과 같은 망언으로 국내외 분란을 일으켰었다. "많은 제3국인과 외국인의 흉악범죄가 계속되고 있다. 지진이 일어날 경우 이들의 소요가 우려된다"고. 그의 말대로라면 자기네 일본 국민만 올바르고 착하며 외국인은 모두 잠재적 흉악범죄자가 된다. 특히 심각한 건 그가 지칭한 제3국인이란 표현이었다. 제3국인이란 2차대전 전후 일본 거주 한국인과 대만인을 경멸조로 속칭해온 말이었던 것이다. 당연히 우리 국민이 크게 격분했음은 물론이다. 그 옛날(1923년 9월 초) 간토(關東) 대지진 때의 광기어린 한국인(당시 조선인) 대학살이 연상돼 새삼 몸서리가 쳐지기도 했다.
"너희들 때문에 우리가 일자리를 빼앗기고 있다" "걸핏하면 범죄나 저지르는 작자들, 빨리 너희들 나라로 돌아가라". 요즘들어 부쩍 외국인, 특히 그들 노동자들에 대한 적대행위가 거세게 확산되고 있다 한다. 곳곳에서 인종주의적 모멸감과 차별, 폭행을 당했다고 호소하는 외국인들이 크게 늘고 있다는 것이다. 갑자기 우리나라에 웬 이시하라 신타로 같은 인물들이 득시글대게 됐나싶다. 이러다 외국인에 대한 무차별 폭력을 일삼는 유럽의 '스킨헤드'가 우리 사회에도 등장하게 되는 건 아닌지 두렵기조차 하다. 특히 근래들어 외국인에 대한 혐오감이 한층 커지는 건 보이스피싱 같은 외국인 범죄가 증가한데다, 경제위기 속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저소득층의 일자리를 뺏어간다"는 인식이 늘고 있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얼핏 그럴듯해 보이긴 한다.
사실 몇년사이 외국인들의 보이스피싱 금융사기와 같은 지능형 범죄가 크게 늘긴 했다. 2004년 1천660건이던 게 지난해엔 4천536건으로 2.7배나 증가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일부 외국인 범죄를 빌미로 마치 모든 외국인이 범죄자인양 취급한다면, 이시하라 신타로와 과연 무엇이 다를까 싶다.
"외국인들이 일자리를 뺏는다"는 말도 그렇다. 1960~1970년대 한참 배고프던 시절 많은 한국인들이 살길을 찾아 머나먼 외국으로 떠나가던 때를 생각해 보자. 그들도 그때 그런 말들을 들었다면 마음이 어땠을까.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위험하고(Dangerous) 지저분하고(Dirty) 힘들다(Difficult)는, 소위 3D업종이라면 고개부터 내저어온 걸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게 바로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그런 우리가 이제와서 그같은 말을 할 수 있을까. 게다가 기업주들을 대상으로한 어느 설문조사에선, 70% 이상이 "한국인을 구할 수 없어 외국인을 고용한다"고 답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다인종 다문화시대 후진적 사고를 버리자" "외국인을 동등한 공동체 일원으로 보듬는 인식이 요구된다"는 등의 원론적 이야기를 새삼 강조하고 싶진 않다. 그러나 그들이 학대를 못견뎌 고국으로 돌아갔을 때, 그들 나라에서 우리를 어떻게 여길까를 생각해 보자. 거꾸로 우리가 그들 나라에서 그런 대접을 받는다면 또 어떨지도….
한참 헐벗던 시절 외국으로 떠나간 한국인들이 낯선 땅에서 찾은 일거리는 대부분 3D업종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정작 힘들어 했던 건 일 자체가 아니라, 백인들의 차별과 멸시였다고들 한다. 마음 속 깊이 되새겨볼 일이다. 마침 안산시가 관내 외국인 인권보호를 위해 '외국인 인권조례'를 만든다니 그나마 반갑다. 이런 일이 안산시에서만 그치지 말고 전국적으로 확산되길 기대해 본다.
잘 알다시피 버락 오바마는 케냐인 아버지를 둔 흑인이지만, 미국의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지난해 프랑스 대통령이 된 니콜라 사르코지 역시 아버지는 프랑스에 이민온 헝가리인이고, 어머니는 그리스계 유태인이다. 세상은 이렇게 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