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얘기가 사실이라면 문제는 심각하다. 7천여 구직희망자들의 면접기회 부여는 언감생심이고 원서접수와 동시에 서류전형 탈락이란 추론이 성립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민간기업도 아닌 국가기관이 국민을 기만했을 뿐만 아니라, 헌법에 보장된 국민들의 직업선택의 자유까지 제한했다는 점에서 명백한 범법행위다. 밀실전형을 통해 사전에 선발한 연구원의 능력이나 자질이 7천여 원서접수자들보다 뛰어난지도 의문이려니와 한 푼이 거금인 시기를 맞아 신문광고비만 낭비했다는 비난도 면할 수 없다. 제한된 연구분야의 고급인력을 필요로 하는 연구소의 특수한 사정을 모르는 바 아니다. 또한 이 연구소가 국민들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직원채용에 대한 정보공개도 당연하다. 그러나 아무리 예쁘게 봐주려 해도 너무했다는 생각이다.
'신도 부러워한다'는 공공기관들이 최고경영자, 연구원 등 소수의 인재들을 채용할 때 필요인력을 사전에 확보해 놓은 후 모집공고를 내는 식의 잘못된 채용방식이 횡행하고 있음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러다 보니 이런 내막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채용공고가 신문에 소개되더라도 아예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공연히 남의 들러리 노릇 하기가 싫은 탓이다. 공공기관의 채용방식이 이런 실정이니 구직희망자들은 정계 혹은 관계(官界)의 힘 있는 사람들에 연줄을 댈 수밖에 없고 그 와중에서 각종 채용비리가 발생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인재선발도 담보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낙하산 시비가 불거질 개연성도 높다.
공기업들의 채용실태가 이 지경인데 민간기업들은 오죽하겠는가. 매년 이맘 때만 되면 내로라 하는 대기업들은 경쟁적으로 신문에 대문짝만한 신입사원 채용광고를 내곤 한다. 채용규모만 해도 적게는 수백명, 많게는 수천명씩 한꺼번에 채용한다고 공지한다. 덕분에 각 대학 학적부서는 졸업증명서 등을 떼는 졸업생들로 한바탕 법석을 떨고 취업준비 관련 학원이나 피부과, 정형외과 등은 업무폭주로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취업희망자들이 1점이라도 더 따기 위해 막대한 비용지불도 불사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막상 채용을 마무리하고 보면 신문에 광고한 구인숫자를 다 채우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구직희망자들은 인산인해로 몰려드나 정작 해당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들이 그다지 많지 않은 탓이다. 수시채용 등으로 기존에 이미 선발했던 인원 수까지 공채인원에 포함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대규모 채용공고는 속빈 강정이자 전형적인 과장광고였던 셈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동시장이 수요자중심의 구조인 데다 작금의 고용없는 성장은 설상가상이어서 기업들의 왜곡된 채용관행을 나무랄 수도 없을 뿐더러 마땅한 제재수단도 없어 보인다.
본격적인 취업시즌이다. 그러나 올해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인해 세계 각국은 전례없는 실업쓰나미로 고민이 깊다. 국내 기업들은 올 하반기 취업계획을 줄줄이 수정, 신규채용을 아예 포기하는 기업들도 상당하다. 또한 내년도 경제가 올해보다 더 나빠질 전망이 우세해 취업재수는 언감생심이다. 구직자들을 우롱하는 들러리 채용관행이 기승을 부릴 가능성도 훨씬 커졌다. 지난 외환위기 무렵 졸업자들 간에 회자되던 '버림받은 세대' 혹은 '저주받은 세대' 기억이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낙방이란 현실에 한 번 울고 남의 들러리 신세에 불과했던 사실을 인지한 후에 또 한 번 울어야 하는 취업준비생들의 처지가 딱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