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기가 오르고 최근의 불안한 경제사정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선배는 기업의 중요성을 거론하며 불쑥 이런 말을 꺼냈다. "기업 수준에 맞는 검찰권 행사가 중요해. 그래야 기업이 살고, 국가도 살지"라며 선배는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했다.
안산지청 재임시 환경을 담당하면서 환경단체 간부들과 가진 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환경단체 간부들은 시화공단내 공장들의 환경오염실태를 고발하며 강력한 단속을 요구했다. 한치의 물러섬도 없어 보이는 긴장된 분위기였다. 그러나 선배는 "환경단체가 제시하는 기준으로 단속을 하면 공단내 어느 공장도 살아남을 수 없으며 검찰수사의 목적이 기업의 씨를 말리자는 것도 아니다"는 점을 지적하고 "기업수준에 맞는 단속을 하겠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현재의 환경단속기준은 미국 등 선진국의 기준이며 이 기준을 우리 기업 모두에게 적용하는 것은 어른의 잣대를 엉금엉금 기는 아이에게 적용하는 것과 같아 결국 아이는 걷지도 못하게 될 것이라는 게 그의 논리였다.
엄정한 법집행을 해야 할 검사가 비리와 타협한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에 대해 "그럴 수 있냐"고 따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기자생활 15년동안 이것저것 많이 지켜봐 온 지금, 그의 말은 내 귀에 꼭 들어맞았다.
검찰권 행사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가를 조금이나마 이해해 볼 수 있었던 대목이었다.
이야기를 돌려, 지난 9월 임채진 검찰총장이 수원지검을 방문해 지방권력 비리 척결을 주문한 이후 경기남부지역 정관가에는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현재 수사와 내사가 진행중인 5명의 지방자치단체장을 포함, 경기남부 대다수 단체장에 대해 검찰이 비리 첩보수집에 나서면서 지역 정·관가가 꽁꽁 얼어 붙었다. 덩달아 일선 공무원들도 단체장 수사의 불똥이 혹 자신들에게 튀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사실 '지역의 대통령'이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일부 자치단체장들의 전횡은 심각하다. 얼토당토 않은 정실인사는 물론이고 대규모 공사를 발주하면서 측근을 통해 뒷돈을 챙기는 소통령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검찰총장은 이런 지방권력에 대한 강력한 수사를 주문했을 것이다.
하지만 검찰수사가 단체장의 '비리'보다는 '단체장'만을 겨냥한 듯한 분위기가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단체장을 잡아 실적을 쌓으려 하는 것인지, 단체장의 비리를 발본색원, 차후 유사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건전한 지방자치의 토양을 마련해 주자는 것인지…, 요즘처럼 검찰의 의중을 파악하기가 힘들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