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경 (인하대 교수·아태물류학회장)
필자의 어린 시절 남자 아이들이 유난히 즐겨하는 놀이로 구슬치기와 딱지치기가 있었다. 돌이켜 보면 보잘 것 없는 유리나 종이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니지만 그때는 딱지 한 장, 구슬 한 개를 더 따내기 위해 왜 그렇게 집착하고 친구들과 다투기까지 했던지. 귀찮게만 여겼던 어머니의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정작 새겨들었어야 했던 중요한 것이었는데도 말이다.

근자에 기업에 있는 지인들에게 안부전화를 걸어보면 첫 마디가 대개 어렵다거나 아니면 바쁘다는 말을 듣게 된다. 왜 이리들 바쁘게 살고 있는지. 한국인의 속성을 대변하는 단어의 하나도 '빨리 빨리'로 널리 알려져 있고 웬만한 외국인들은 이 말이 의미하는 바도 잘 알고 있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빨리 빨리' 정신이 오늘의 한국경제를 있게 한 원동력의 하나라는 우스개도 있지만 과연 우리가 왜 이처럼 바쁜지 정말 중요한 일을 위해 바쁘게 살고 있는지는 찬찬히 새겨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스위스의 한 노인이 80세를 맞아 지난 세월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시간으로 계산해 보았다고 한다. 그 결과 잠자는 데 26년, 일하는 데 21년, 식사하는 데 6년, 남이 약속을 안 지켜 기다린 시간이 5년, 혼자 낭비해 버린 시간이 5년, 세면하는 데 228일을 보냈으나, 아이들과 놀아주며 보낸 시간은 26일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리고 행복했다고 느꼈던 시간을 계산해 보니 고작 46시간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진정 우리 인생과 시간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어야 할까?

인생사 이상으로 경제 또한 복잡하고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올해는 특히 유가상승이다, 파업이다, 금융위기다 해서 그 어느 해보다 우리와 세계경제 모두 위기상황을 맞아 급박하게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 왔다. 금융위기로 촉발된 경제불안으로 실물경제가 침체기로 진입하는 조짐을 보이면서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세계 주요 국가들이 대규모 재정지출에 의한 경기부양을 시도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10년까지 4조위안을 투입해 경기부양에 나서겠다는 중국판 '뉴딜 정책'을 발표하였고, 일본도 2009년 예산이 88조엔을 넘어 사상 최대의 예산규모를 기록할 것이라고 한다.

국회에서 난항을 거듭하던 2009년 예산이 284조5천억원 규모로 확정되었다는 소식이다. 이전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올해 역시 예산심의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정부와 국회가 내년도 예산과 사업들을 결정하고 심의하는 과정에서 진정 작금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경제를 재도약시키기 위해 어떤 방향성과 지침을 가지고 예산을 심의하였고 어떤 사업들을 우선순위에 둘지를 진정으로 고민하였는지를 되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예산운용 방향에 대해 한 쪽은 부자들만을 위한 감세정책이라 하고, 한 쪽은 국민 모두가 혜택을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 쪽은 4대강 정비 사업이라 하고, 한 쪽은 대운하 추진을 위한 전초사업이라고 주장한다. 예산심의 과정은 그 속성상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사업이 많기 때문에 치열한 논쟁은 당연하기는 하지만 도가 지나치거나 본질적이지 않은 문제로 정쟁이 계속되면 결국 정당간 정략은 있으나 국가전략에 대한 고민은 부재한 것이라고 비쳐질 수밖에 없다.

의류업체가 옷 하나를 시장에 출시하기 위해서도 길게는 일 년 전부터 계획에 들어간다고 한다. 하물며 한 해의 국가경제를 움직이는 예산을 결정하는 시간이 채 몇 달이 못 되는데 제대로 된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이제야말로 정부도 예산계획을 보다 일찍 수립하고, 국회도 예결위를 상설화해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예산규모와 사업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체제로 변화해야 할 것이다.

어김없이 한 해를 돌이켜 보는 연말이 왔다. 올해를 상고하고 내년을 기다리면서 개인은 보람되고 행복한 삶을 위해, 국가는 민초들의 삶을 보듬을 수 있도록 보다 나은 경제여건을 만들기 위해, 진정으로 어디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