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년 같으면 뽀얀 수증기가 가득차 있어야 할 떡 방앗간에 냉기가 감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쉼 없이 돌아가던 쌀 분쇄기는 얼음처럼 멈춰 서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배달 기사와 아르바이트생을 두며 대목인 연말을 보내느라 분주했다던 부평종합시장 A방앗간. 올해는 사장 임모(49)씨가 아내와 우두커니 방앗간을 지키고 있다.

극심한 경기침체로 재래시장 상인들이 그 어느 해보다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외환위기 때보다 더 굳어진 소비심리로 지난 10월부터 시장에는 빈 점포가 하나 둘 늘고, 직원 하나 없이 홀로 점포를 운영하는 '나홀로 사장'도 속출하고 있다.

GM대우 부평2공장이 12월 한 달 동안 조업을 전면 중단키로 함에 따라 일대 시장에도 어김없이 직격탄이 날아왔다. 14일 현재 부평종합시장과 부평깡시장, 부평진흥시장이 한데 모인 부평시장에는 모두 7개 점포가 비어 있다. 설 연휴가 지나면 5~6개 점포주가 점포를 내놓을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도 돈다.

동이 트기 전인 이른 새벽에 점포 문을 열던 상인들의 출근시간이 늦어지고, 아침 장이 끝나면 시장 곳곳에서는 고스톱 판이 벌어지기 일쑤다.

20년째 건강원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61)씨는 "있던 상인도 장사가 안 돼 나가는 판에 점포 내놓으면 누가 들어오겠느냐"며 "이 나이에 일터가 있다는데 만족하며 근근이 버티고 있다"고 푸념을 늘어놨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시장에서는 상인 간 다툼도 잦아졌다. 지난 12일 남동구 구월시장에서는 손님 잡기에 열을 올린 노점상인 간 다툼이 벌어졌다. 잘 되는 시장을 찾아 구월시장에 왔다는 신규 노점 상인이 기존 상인의 고객을 죄다 가로챈 탓이다. 상인들의 무너진 상도덕에 시민들은 미간을 찌푸리고 발걸음을 돌렸다.

중소기업청으로부터 우수점포 시상을 받은 소위 잘나간다는 점포도 경기침체를 피해가진 못했다.

서구 중앙시장에서 15년째 B아동복을 운영하고 있는 이모(45)씨는 "그나마 단골손님 덕에 먹고 살판"이라고 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조사해 밝힌 '2009년 소매시장 전망'에 따르면 재래시장의 성장률은 ―0.1%를 기록, 올 해보다 더 극심한 한파가 재래시장에 몰아닥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