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한 부분을 지울 수 있다면 링 바닥에서 뒹굴던 굴욕의 순간도 아니다. 그 시간은 바로 전처와 지낸 3년의 결혼 생활이었다. 그때는 매 맞고 돈 벌기가 싫을 정도였다"
'짱구' 장정구(45)가 22일 오후 강남구 논현동의 한 음식점에서 출판 기념회를 갖고 '나는 파이터다-영원한 챔피언'이란 자서전을 공개했다.
장정구가 약 5개월 동안 틈틈이 써 온 219쪽 분량의 자서전에는 권투를 시작한 배경과 챔피언에 오르기까지 과정, 복싱에 대한 자긍심 등 그가 그동안 느꼈던 감동과 좌절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특히 80년 세계 프로복싱 무대 경량급을 주도했던 전 세계복싱평의회(WBC)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에 스무 살의 나이에 올라 15차 방어전까지 성공한 장정구에게는 결코 지울 수 없는 아픈 기억도 있었다.
장정구는 이 자서전에서 "이혼한 전처와 결혼생활은 잊고 싶은 순간"이라고 고백, 챔피언 벨트를 지키는 것보다 전처에 대한 배신감을 극복하기가 더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불행의 시작은 1984년 8월 포항에서 열린 도카시키 가쓰오와 3차 방어전을 치른 지 얼마 뒤에 있었다.
지인의 소개로 한 살 아래인 전처를 만난 장정구는 6개월 후에 약혼식을 올리고 다시 6개월 뒤 결혼식을 치렀다.
장정구는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두 사람이 죽자 살자 사랑을 한 것도 아니었는데 왜 그토록 주위 반대를 뿌리치며 고집을 부렸는지..."라고 후회했다.
결혼 전부터 돈 문제 등으로 불거진 장모, 전처와 갈등으로 부부 싸움은 끊이지 않았고 장정구는 가정이 평탄치 않으면서 복싱에 전념하기 어려웠다.
최대 고비는 권투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때였다.
프로야구 선수 최고 연봉이 2천만원이던 시절, 세계 챔피언에 오른 이후 수입이 크게 늘면서 경기당 대전료로 7천만원을 받던 때였다.
그는 방어전에 성공하고 챔피언 5년8개월 동안 상당한 액수의 돈을 벌었다. 하지만 돈은 모이지 않고 계속 새나가면서 아내와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장정구는 당시 "운동을 그만두고 싶었다. 챔피언에 미련도 없었다. 매 맞고 돈 버는 일도 싫었다. 피 흘리며 벌어 온 돈이 뒷구멍으로 새나가는 것을 바보처럼 바라보는 것도 싫었다"고 토로했다.
결혼생활 3년 동안 정신적으로 힘들었지만, 장정구는 챔피언으로서 슬럼프에 빠질 수도 없어 이를 악물고 견디며 14차 방어전까지 해냈다.
그러나 장정구는 "아내와 장모가 두 자녀를 데리고 56평형 아파트 중도금까지 갖고 집을 나가 재산도 함께 잃었다"면서 "이후 세상이 무섭고 사람이 무서웠다"고 자신의 인생에서 최대 위기의 순간을 설명했다.
전처와 이혼을 결심하고 재산을 되찾기 위해 장정구는 변호사를 선임해 고소도 했지만 자녀를 생각해 긴 고민 끝에 고소를 취하했다.
전처에 대한 배신감으로 날마다 술을 마시던 그런 장정구에게 희망이 찾아온 것은 1989년.
장정구는 친구 소개로 부인 이숙경(44)씨를 만나 당시 전 재산이었던 3천만원으로 새살림을 차린 뒤 정신적으로도 안정을 되찾았다.
장정구는 "첫 결혼의 쓰라린 실패와 막대한 손실도 지금의 아내를 만나기 위해 치른 값이라 생각하면 다소 위안이 된다"고 했다.
출판 기념회에 함께 나온 이숙경씨는 남편의 아픈 과거에 대해 "이제는 그만 잊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남편의 그 어려웠던 시기를 이해하지만 이젠 지나간 얘기"라고 말했다.
부산에 장정구체육관을 운영하면서 후진 양성에도 힘을 쏟는 장정구는 이숙경씨 사이에서 현재 20살, 13살 된 딸 두 명을 낳았다.
'짱구' 장정구 자서전 "매 맞고 돈 벌기 싫었다"
입력 2008-12-2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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