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건영 (논설실장)
"우는 아기 젖준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울어도 젖을 물리지 않는 엄마도 있다. 아직은 젖줄 시간이 안됐다면서…. 즉 규칙적으로 시간을 맞춰 줘야 하는데, 아무 때나 운다고 젖을 물리면 습관이 나빠지고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백번 옳은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만에 하나 아기가 평소보다 소화를 잘 시켜, 정말 배가 고파서 우는 것이라면, 그래도 시간을 맞춰야 한다며 계속 내버려둬야 하는 것일까. 야당과 시민단체는 물론, 여당 내부에서도 나오는 개각 요구 및 설에 대해 한사코 부인하는 이명박 대통령을 보면서 문득 떠올려본 생각이다.

"쇄신이다. 이런 식의 인사는 과거 방식이고, 독재국가에서 정치적으로 이용할 때 쓰는 방식이다. 과거엔 한해가 지나고 새해가 오면 새로운 정치방안을 내놓곤 했지만, 어느 시점에 새로운 것을 내놓고 그런 거보다는 적시(適時)에 필요할 때 필요한 사람으로 바꿔나가는 원칙을 갖고 있다." 이 대통령이 개각 불가 입장을 거듭 밝히면서 한 말들이다.

심지어 그는 조기 개각설이 나오자 "왜 자꾸 이런 게 (언론에)나가느냐"고 반문, 우회적으로 불쾌감을 나타냈다고도 한다. 이런 걸 볼 때 분명 가까운 시일내 개각은 없을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느닷없이 몇몇 부처 1급 공무원들이 잇달아 일괄사표를 제출하면서, 공직사회의 대대적 물갈이를 예고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 '느닷없이'란 표현을 쓰긴 했으나, 엄밀히 말해 그렇게 느닷없는 일만은 아니었다. 최근 이 대통령이 "내뜻이 공무원들에게 잘 먹혀들지 않는다"고 말한 것을 비롯, 청와대 및 여권 주변에서 "고위 공무원들이 움직이지 않아 정책 침투가 안된다"며 물갈이 필요성을 계속 제기해왔던 것이다. 특히 여권 관계자들은 최근들어 부쩍 "정부가 열심히 하려 해도 코드가 안맞는 공무원들이 잘 움직이지 않는다"고 불평하는가 하면,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정권이 바뀌면 정책이 바뀌고 사회 전반이 바뀌어야 한다"고 하기도 했다.

이런 정황들로 미뤄 볼 때 공직인사 쇄신은 이미 예고됐다고 여겨진다. 단지 개각설이 부인되는 와중에 일어난 일이라 언뜻 느닷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아무튼 공직사회 물갈이는 이미 시작됐고, 그 폭도 꽤 넓어질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아마도 장·차관들을 교체하는 대신, 공무원사회의 대규모 인사개편으로 가닥을 잡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지금의 공직사회가 일을 하려들지 않는 분위기고, 또 그런 분위기를 바꾸는데 필요하다면 인사쇄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더구나 역대 정부 초기의 고위직 물갈이는 어쩌면 관행이기도 했다. 당장 지난 노무현 정부 초기에도 상당수 고위직이 사표를 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여기엔 전제(前提)가 있어야 한다. 너무도 당연한 교과서적인 말이 되겠지만, 인적쇄신을 빌미로 현 정권에 줄을 댔거나 친분과 연줄로 얽힌 사람들로 채우는, 모처럼의 기회로 삼는 따위의 물갈이가 돼선 안된다는 것이다. 정실·지역 코드로 무리하게 물갈이를 했다가 숱한 부작용을 낳았던 전철들을 다시 밟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또한 이런 일이 자주 반복될 때 자칫 공무원들의 정권 눈치보기가 심화될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기 바란다.

아울러 "공무원들이 잘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지만, 여기에 장·차관들의 잘못은 없었는지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어쩌면 그같은 자문(自問)이 먼저 있었어야 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국정감사 때 보니 두어개 부처 장관 빼고는 모두 불안하더라"고 했던 여당의 어느 고위 당직자 말이 과연 그냥 나온 말이었을까.

공무원이 일을 하게 하는 건 누구보다 장·차관이다. 따라서 공무원들이 움직이지 않았다면, 이는 곧 통솔력과 장악력이 없는 인사들이 장·차관 자리에 앉아 있었다는 말과 다름없을 것이다. 바꿔 말해 대통령의 인사 실패라고도 할 수 있을 듯 싶은데…. 정녕 그런 상황이라면, 무엇보다 장·차관들 교체부터 먼저 하는 게 순서가 아닐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