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의 역사와 비극에는 신탁이 개입하게마련이다. 중국 주왕조의 미소없는 미인 포사는 태생부터가 기이했다. 동주열국지(김구용 역)에 보면 포사는 용의 정기로 잉태돼 수십년간 어미의 자궁속에 웅크리고 있다가 태어났다 한다. 늙은 궁녀의 몸에서 갑자기 태어났으니 당시 주선왕은 신관에게 점을 치게 했다. 그 결과 나라를 파탄시킬 요물이란 점괘가 나오고 결국 포사는 물고기 먹이로 강에 버려졌다. 그런데 포사는 기어코 살아나 주선왕의 아들인 주유왕의 혼을 빼놓기에 이르고, 왕은 그녀의 미소를 얻고자 제후들을 봉화로 불러모으는 장난질을 치다가 나라를 들어먹었다. 그리스 비극의 전형인 오이디푸스 역시 불길한 신탁으로 버려졌으나, 결국은 왕인 아비를 죽이고 왕비인 모친과 결혼해 네 아이를 낳음으로써 신탁의 숙명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렇듯 역사와 문학에서 신탁의 의미는 지대하다. 한 나라의 흥망이나, 한 인간의 전면적인 파멸은 인간적 수준의 이성이나 감성으로는 예측하고 선험할 수 없는 분야이기에 초월적 존재가 설계한 숙명의 영역으로 돌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천재지변을 과학적으로 예측할 수 없었던 시대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신과 접속하는 신관의 지위가 막강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현대라고 다를 것 없다. 차기 대통령을 점찍었다 해서 삽시간에 장안의 명사가 된 점술가가 한둘이 아니다.
최근들어 점(占)집들이 호황이라 한다. 수원역과 같이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곳마다 포장마차 만큼이나 흔하게 간이 점집들이 즐비하다는 것이다. 본래 사람들의 불안심리를 먹고사는 점의 속성을 감안하면, 점집의 확산과 호황이 경제위기와 무관치 않다고 보인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경제공황의 시대에 모두가 자신의 미래에 확신이 없는 시절이니, 희망의 신탁이라면 몇천원이 아깝지 않을테니 그렇다. 언제 퇴직당할지 모르는 직장인, 취업 걱정에 어깨가 늘어진 젊은이, 돈 빌려줄 귀인이 절실한 사업가…. 하나같이 희망에 굶주린 사람들이 넘쳐나는 시대 아닌가. 점집들의 호황으로 경제불황의 실체를 되새겨야 하니, 불편한 마음 어쩔 수 없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