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구 (수원대 경상대학장·객원논설위원)
지난 6일 경찰의 총격으로 16세 소년이 사망한데 대한 아테네 시민들의 반정부시위가 그리스 전역은 물론 반(反)세계화단체들이 가세하면서 유럽과 미국에까지 확산되고 있다. 시위의 성격도 미국발 금융위기가 초래한 극심한 경제불황에 대한 항의데모로 변질되었다. 러시아에서도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청년실업률이 비상히 높은데다 상당수의 '700유로 세대', 한국판 '88만원세대'들이 경제적 고통을 더 이상 감내키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 탓이다.

그 와중에서 칼 마르크스 부활의 목소리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미국과 유럽의 은행 국유화 등 구제금융정책에 무덤속의 마르크스가 미소를 짓고 있다"고 전하고 있으며 영국 성공회의 로완 윌리엄스 캔터베리 대주교는 "자본의 방종을 경고한 마르크스가 옳았다"며 한술 더 뜬다.

옛 동독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최근의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43%가 "자본주의보다 사회주의를 선호한다"고 응답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지난해 영국 국방부가 2035년의 세계를 전망한 '미래전략환경 전망보고서'에서 세계적 불평등의 심화로 미구에 마르크시즘이 부활할 것을 확신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에서도 최근 공자와 함께 마르크스가 다시 강조되고 있다. 대학생 전원은 마르크스주의 강좌를 의무적으로 수강해야 하며 고교생들도 마르크스주의시험에 합격해야만 대학입시에 응시할 수 있도록 제도화했다. 승자독식의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빈부격차 확대를 저지할 마땅한 대안이 없는 때문이다. 무자(戊子)년 지구촌의 세모(歲暮)는 '메리 크리스마스' 대신 마르크스 부활외침으로 대미를 장식한 것이다.

근자 들어 우리나라 서점에서도 오래전에 사라진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을 지적한 서적들이 다시 팔리고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존 K 갤브레이스의 '대폭락 1929'는 물론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인기를 끌었던 '대공황전후 유럽경제', '대공황의 세계적 충격', '금융제국 JP모건' 내지는 심지어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찾는 이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단다. 그동안 팔리지 않아 창고에 처박아 두었던 고물(?)들이 다시 햇빛을 보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장기간 내수부진으로 사실상 백수가 지난 11월 현재 275만명에 이르고 있다. 일은 하고 있으나 제대로 된 직장을 갖지 못한 불완전취업자, 즉 반(半)백수들까지 합치면 무려 317만명으로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13%에 달한다. 덕분에 로또복권 등 사행산업이 특수를 맞고 있다. 복권구매층도 예전의 중년남성들 중심에서 남녀노소로 다변화되면서 복권판매량이 꾸준히 늘고 있으며 사설경마 및 불법오락실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한계상황에 직면한 절대다수의 서민들은 성공 확률이 제로에 가까운 인생역전게임에 탐닉하고 있는 것이다. 그 와중에서 계층간 갈등의 골도 점차 깊어지는 느낌이다. 15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연구에 의하면 지난 10년간 빈부격차 확대로 사회계층간의 갈등이 이미 위험수위에 이른 것으로 확인되었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벌써부터 수출은 물론 내수경기 위축조짐이 감지되는 터에 내년도 경기전망은 최악이다. 한국은행의 고위관계자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탄식하는 실정이다. 대우자동차가 전면휴업중인 가운데 쌍용자동차의 운명이 가늠되지 않는다. 지난 24일에 개최된 국내 최대의 전자업체와 협력업체간의 금년도 종무회식자리에서 잘 나가던 한 협력업체의 사장이 "며칠 남지 않은 내년도 시무식에서 여러분들을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언급, 충격을 주었다는 뒷얘기도 들리는 판이다.

기축(己丑)년이 밝아온다. 기억하기도 싫은 1997년이 정축(丁丑)년이었는데 공교롭게도 또다시 소띠 해를 맞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새해벽두부터 대량해고 및 비정규직법 개정과 관련, 일전불사의 결의를 다지는 중이다. MB정부의 지금까지 정책을 볼 때 서민들로 하여금 '좌향좌'하도록 부추기는 인상이 짙다. 정부는 용도폐기된 신자유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모델개발을 위해 진지하게 고민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