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종섭 (서울대 법대교수)
'예술은 사기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아티스트 백남준이 세상을 하직하며 남기고 간 말이다. 예술이라는 것이 기존의 관념과 현실의 전복을 꾀하는 것이니 만치 기성의 관념에서 보면 사기임에 틀림없다. 눈속임뿐만 아니라 생각의 속임도 있다. 예술품도 이런 사기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원래 정해진 가격이 없다. 그러기에 지난해 수억원대로 묻지마 미술품 투기를 하다가 작품값이 반토막 이상으로 떨어졌어도 누구 탓할 일이 못 된다.

백남준의 말 중에는 더 핵심을 찌른 말이 있다. '일을 하면 욕을 얻어 먹고 일을 하지 않으면 욕을 얻어 먹지 않는다. 그러나 일을 해야 한다'. 누구 해칠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도 새로운 시도를 하는 예술가에게 욕을 한 사람이 여간 많지 않았으면 이런 말을 하지 않았으리라. 기존의 성과나 명성에 안주하지 않고 세상 떠날 때까지 늘 새로운 실험을 한 백남준까지 이런 말을 할 지경이니,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 사람은 욕 얻어 먹는 것을 겁내서는 안 되는 것 같다.

현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다 되어 간다.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 보면, 정부가 바뀌고 일할 사람들이 새로 배치되었는데도 과거와 비교하여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도대체 과거 정부와 달리 한국이 지향하고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전 정부가 잘못되었다면 현 정부는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아직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더구나 누가 장관이고 그 장관이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새 정부에서 장관들이 앞장서서 할 일이 많을 터인데도 장관의 존재감이 국민들에게는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 정부가 출범한 후에 국민을 향하여 한 이야기는 적지 않다. 사회통합에 힘쓰겠다, 국민의 먹거리 안전에 걱정없이 하겠다, 녹색성장을 신성장의 동력으로 하겠다, 법과 질서를 바로 세우겠다, 사회 안전망 확충에 최선을 다하겠다, 대학의 자율화를 실시하겠다 등등 지난 1년 동안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말들을 쏟아내었다.

그런데 정작 녹색성장을 한다면 그 일들이 어느 부처에서 어떻게 진행되는지, 법과 질서가 중요하다면 이를 실현하기 위해 국가적으로 어떤 계획 아래 무슨 일들이 행해지고 있는지, 고령화사회에 직면하여 준비하고 해결해야 할 많은 과제가 있다면 어느 부처에서 어떤 단계를 거쳐 무슨 일들이 추진되고 있는지, 그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국민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 지금쯤은 구체적인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할 텐데 아직도 국민들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말이다.

정부가 출범하고 1년이 가까워지는데도 공무원들이 일을 하지 않는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고, 대통령이 답답해 한다는 이야기만 반복되고 있을 뿐이다. 어떤 때는 정권 초 '촛불시위' 때문이라고 변명을 한다. 올해에도 촛불시위가 있으면 또 1년을 허송세월하며 보낼 것이 아니라면 이것은 변명으로 둘러댈 내용도 아니다.

새로운 국가 과제를 입안하고 힘차게 추진하는 것을 내각이 주도할 것인가, 청와대가 주도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그러나 현 정부 출범 전 인수위시절 이후 일정한 기간 확인된 것은 내각이 이를 주도할 능력도 의사도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제 국가에서 청와대가 큰 그림들을 그리고 일의 추진계획과 점검을 하면서 이끌고 갈 수밖에 없으며, 그에 필요한 조직도 다시 정비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일들을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면 청와대가 이런 일을 하면서 욕을 얻어 먹는 것은 각오를 해야 한다. 청와대가 욕을 얻어 먹기 두려워 하여 아직까지 내각에 떠맡긴다면 일은 더더욱 될 수 없다. 이런 상황을 보다 못한 어떤 유력인사는 '대통령은 왜 죽을 각오를 하지 않는가'라고 직설을 던지기도 했다. 대통령 개인보다도 청와대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는 질책이다. 귀 담아 들을 말이다.

원래 새 정부가 들어서면 6개월 내에 개혁정책을 제시하고 1년 안에 일단락이 지어져야 한다. 그러나 현 정부는 이를 놓쳤기 때문에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새해에는 청와대와 정부를 전면 개편하고 한국이 나아가야 할 정책을 힘차게 추진해야 한다. 새롭고 활기찬 정부의 운용은 젊고 유능한 인재들이 등장하는 모습이어야 한다. 국민은 여전히 푸르고 싱싱한 정부를 보고 싶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