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태 (지역사회부 차장)
첫번째 이야기. 한달 전쯤 모처럼 쉬는 날이라 평소와는 달리 해가 중천에 뜰때까지 잠자리에서 뒹굴 수 있는 호사를 누렸다. 그리고 느지막하게 일어나 브런치(아침을 겸하여 먹는 점심 식사, 아점)를 먹고는 찌뿌드드한 몸을 이끌고 동네 목욕탕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집을 나선지 얼마나 지났을까.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무엇인가를 오물오물 씹고 있는 할머니를 발견했다. 멀리서 봤을때는 길을 가다 너무 힘들어 잠시 쉬면서 군것질을 하는가 보다 생각했지만 그 할머니와의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내 생각은 여지없이 깨졌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그 할머니 앞에는 동네 사람들이 내다버린 듯한 패스트푸드 봉투가, 그리고 그 옆에는 살을 깨끗하게 발라낸 닭 뼈다귀 2개가 가지런히 놓여있었기 때문이다. 그 할머니 손에도 뜯다만 닭 뼈다귀가 들려있었다.

두번째 이야기. 지난 11월초 모 방송의 한 다큐멘터리. 고물상의 72시간을 관찰한 이 프로그램 중간에 한 할머니가 등장했다. 칠순을 훌쩍 넘겨버린 듯, 자그마한 몸에 허리까지 휘어 걷기조차 힘든 이 할머니는 힘겹게 폐지를 고물상으로 가져왔고 결국 약간의 돈을 손에 쥐었다. 어제 아침부터 한끼도 먹지 못했단다. 고물상 사장이 건네 준 요구르트를 맛나게 먹으며 허기를 달래는 할머니. 어느덧 할머니를 촬영하던 VJ의 눈가에는 이슬이 맺혔다. 할머니는 라면이라도 사서 끓여 먹어야겠다며 발걸음을 집으로 옮겼다.

요즈음 우리들의 몸을 한껏 움츠리게 하는 것은 정작 영하로 급격하게 떨어진 기온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경제한파다.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는 여지없이 우리네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고 있다. 일거리가 줄어들다보니 최근에는 극심한 생활고를 견디지 못한 생계형 범죄마저 늘어가고 있다. 이에 정부도 생계형 범죄에 대해 벌금을 감면키로 했을 정도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지금 우리들에게 불어닥친 경제한파의 가장 큰 피해자는 사회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홀로 사는 노인들이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온동네를 돌아다녀 폐지 등을 모아 생계를 꾸려갔던 이들 대부분 노인들에게 최근의 급격한 고물값 하락은 치명적이다.

정부에서 도와줄 법하지만 자녀(?)가 있다는 이유로 국민기초생활수급자 혜택을 받지 못하고, 최소한의 자격요건(또는 신청방법을 몰라서)을 갖추지 못해 경제생활을 영위하기 힘든 고령자들을 위한 복지제도인 기초노령연금 혜택마저 받지 못하는 노인들은 지금 추위는 차치하고 극심한 배고픔과 눈물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정부는 올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등에 대한 복지예산을 크게 늘렸고 사회안전망 내실화의 일환으로 '긴급복지지원제도'도 마련하는 등 절차 간소화를 추진키로 했다고 한다. 정부의 정책에 다시 한번 기대해 본다. 그리고 거미줄 같이 촘촘한 사회안전망 구축으로, 두 할머니의 이런 모습을 다시는 보지 않게 되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2009년 기축년(己丑年)을 맞아 간절히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