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언항 (건양대학교 보건복지대학원장)
교수신문은 2008년 한 해를 '호질기의(護疾忌醫)'라는 사자성어로 요약하였다. 경제위기, 촛불집회 등 정치·경제적인 어려움을 당한 것에 대한 자성(自省)이겠지만, '병을 숨기고 의사를 피한다'는 원래의 의미로 볼 때, 건강관리를 소홀히 하는 사람에게 딱 들어맞는 말 같다.

며칠 전 한 대학병원 앞에서 택시를 탔는데, 자연스럽게 건강에 관한 이야기를 택시 기사와 나누게 되었다. 20여 년간 택시를 운전하며 4자녀를 키우는 54세의 주부였다. 건강하고 성격도 활달하여 보였다. 이, 삽십년을 더 살 수 있는 사람들이 검진을 게을리 하여 손 쓸 수 없는 지경에야 병원을 방문하는 안타까운 이야기를 들은 끝이라 건강검진은 정기적으로 받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한번도 받은 일이 없다고 한다.

"왜 검진을 받지 않으세요?" 하니, "암이라고 할 까봐 무서워서요." 활달한 성격과는 딴 판이다. "그래도 받으셔야지요. 공단에서 건강검진을 받으라고 하지 않나요? 여성은 자궁암이나 유방암 같은 경우 아주 싸게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2년마다 한번씩 나오지만 고칠 수 없는 병이라고 할까봐 못 받겠어요"라고 한다. "그래도 꼭 받으세요. 대장암 같은 경우 1기에 발견하면 거의 100% 완치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한사코 검진은 무서워서 받지 못하겠다고 우겼다. 엄마의 건강에 모든 것을 의지하고 있을 자녀들을 생각하니 안타까웠다.

"암은 증상이 나타나 발견하였을 때는 치료가 어려울 때가 많다고 합니다. 고생도 많고요. 게다가 가족들은 얼마나 고통스럽겠어요? 그걸 생각하면 검진을 받는 하루, 이틀 두려운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꼭 검진을 받으세요"라고 당부하고 내렸다.

국립암센터가 2007년 조사한 바에 의하면, 조사대상 2천31명 중 암 검진을 받지 않았다고 응답한 사람은 52.5%였는데, 이 중 7.5%가 '암 발견이 두려워서' 검진을 받지 않았다고 답변하였다.

건강검진을 소홀히 하여 기간이 진행된 암을 발견하였을 때, 치러야 할 대가는 혹독하다. 본인은 물론 가족에게도 큰 재앙(災殃)이다. 참기 어려운 통증, 치료 후유증으로 인한 탈모 등 상상을 초월한 고통이 따른다고 한다. 경제적인 부담도 크다. 대장암의 경우 진단 후 둘째 해까지 약 1천만원의 진료비가 드는데 비해, 4기에 발견되면 그 4배인 약 4천만원이 든다고 한다(국립암센터 자료). 건강보험에서 치료비의 90%를 지불해 주지만 간병료, 교통비 등이 추가되기 때문에 오랫동안 투병하다 보면 실직하게 되고, 가계는 파탄에 이른다. 가족들의 정신적 고통도 크다. 가족이 암에 걸리면 가족 3명 중 2명이 우울증에 빠진다는 보고도 있다.

검진결과 암으로 판명될까봐 두려워하는 이유는 암은 불치의 병이라는 인식 때문인 것 같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암에 대하여는 속수무책이었다. 조기 검진은 물론 치료방법도 별로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몇몇 암을 제외하고는 간단한 검진으로 조기 발견이 가능하고, 완치시킬 수 있다고 한다.

나의 몸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나의 건강은 가족의 운명을 좌우한다. 내가 나의 건강관리를 등한히 하여 가족을 불행하게 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그러니 새해에는 '가족을 위하여 건강검진을 받자'는 다짐을 하자! 외국의 경우 암검진율이 80%에 이른다고 하니 정부와 건강보험공단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국민의 건강검진율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경제위기는 시간이 지나면 해소될 것이다. 그러나 한번 잃는 건강은 회복이 불가능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