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모리스와 같은 다국적 담배기업들이 징벌적 배상판결로 된서리를 맞은게 2000년대 초반의 일이었다. 흡연을 멋진 행위로 묘사한 광고로 담배의 유해성을 은폐했다는 이유로 수백억 달러의 배상판결을 받아 회사의 존립이 위태로웠었다. 그래서 이들이 새로운 담배시장으로 주목해 집중 공세를 펼친 곳이 한국이었다. 하지만 양담배 구입을 매국행위로 낙인찍던 시절에 세뇌당한 한국 끽연가들은 좀처럼 양담배에 눈을 돌리지 않았다. 2002년 담배인삼공사 체제를 벗고 민영기업으로 거듭난 KT&G의 애국 마케팅도 선방의 요인이었고….

하지만 KT&G의 호시절도 이제는 저물어가는 듯싶다. 여전히 국내 담배시장의 70%를 지배하고 있지만 흡연에 대한 사회적 반감이 고조되는데다, 이런 저런 집단소송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어서다. 엊그제 경기도가 KT&G를 상대로 담뱃불 화재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라고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것도 이런 맥락과 무관치 않다. 소송의 핵심은 KT&G가 '화재안전담배' 제조 기술이 있는데도 이를 국내에 시판하지 않아 담뱃불 화재가 빈발했고, 이를 진압하느라 막대한 재정이 허비됐으니 배상하라는 것이다. 경기도가 소송에서 이길 전망은 전문가들 조차도 확신하는 분위기는 아닌 듯하다. 그리고 "술 취한 사람이 사고를 냈을 경우 술 제조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것이냐"는 KT&G의 반발도 수긍할 만하다. 문제는 법리상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이 아니라, 담배로 인한 모든 폐해에 대한 책임을 담배제조사가 무제한적으로 떠안아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이 확산되는데 있다. 그냥 집어던져도 몇초 있으면 꺼지는 화재안전담배를 수출용으로만 만들었다는 것도 국민정서상 KT&G에 불리할 듯하다.

앞으로 기상천외한 담배 소송이 이어지지 않을까 기대되는 바도 없지 않다. '흡연은 폐암등 각종 질병의 원인'이라고 명기한 담배를 과연 제조, 판매할 수 있는 것인지 자체가 따져볼 만한 일일 듯하다. 연초엔 줄게 마련인 흡연인구가 불황으로 인해 올해는 오히려 늘었다는 마당에 빚어진 담배소동의 귀추가 주목된다.

윤인수 경인플러스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