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주 교수는 남덕우·이승윤·김종인 교수와 함께 한때 서강학파의 대표주자이자 과거 압축성장시대를 상징하던 관변이코노미스트였다. "노병은 사라질 뿐"이라는 맥아더장군의 명언이 허언(虛言)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속의 인물들이 다시 부활하는 사례는 드물지 않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맥아더 장군을 무색케 하는 사례들이 적잖게 확인된다. 사공일 21세기위원회 위원장과 한승수 총리,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도 같은 케이스이고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장관과 장수만 국방차관은 1997년 외환위기 초래와 직접관련이 있었던 공직자들로서 불명예 퇴진한 바 있다.
한물간 인물 혹은 정책실패로 도중하차했던 자들에 대한 중용(重用)이 반드시 잘못된 것은 아니다. 실패사례조차 소중한 경영자원인 때문이다. 가정이나 사회적으로 중심이 흔들리는 요즘 같은 때일수록 경륜있는 어르신들의 역할이 특히 중요한데 국가경영의 경우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이다. 학문세계는 물론이고 각종각양의 조직마다 장노(長老)들을 중심으로 늙건 젊건 모든 구성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그렇다고 일본문화가 고리타분한 것은 아니다. 전통과 현대를 교묘하게 조화, 특유의 모더니제이션으로 업그레이드시킨 탓이다. 반세기 이상동안 자민당 일당독재체제가 유지될 수 있는 것도 일본특유의 고층(古層)에 기반을 둔 집단문화 혹은 화(和)의 문화에 기인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일련의 경제정책을 보노라면 과거 개발연대가 연상된다. 지난해 의도적으로 원화약세를 유도한데서 60, 70년대의 수출드라이브정책이 떠올려지고 제2롯데월드 건축허가 추진이나 출자총액제한제폐지·금산분리완화 등도 군부독재시절의 재벌육성정책과 많이 닮았다. 이 정부의 최대프로젝트인 녹색뉴딜사업은 복고풍의 결정판이다. 정부는 올해부터 총 50조원을 투입해서 2012년까지 95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4대강 살리기와 고속철도 조기완공, 중소규모 댐과 폐기물 에너지화시설 건설, 생태하천복원, 재해위험지구정비, 자전거도로 건설에 전체예산의 절반이 훨씬 넘는 28조7천억원이 배정되는 등 이 정부 집권기간 내내 전국의 산하가 공사현장으로 변할 모양이다. 건설업체들은 엄청난 횡재(?)에 표정관리하기 바쁘다.
글로벌경제위기를 맞아 내수경기진작이 초미의 관심사인 시점에서 건설업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9%인 점을 감안할 때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굴뚝산업에 비해 일자리 창출속도가 비교적 빠른 점도 매력이다. 미국 오바마 정부의 그린뉴딜정책과도 외양면에서 흡사해 부담이 한결 가볍다. 그러나 우리와 미국의 사정은 사뭇 다르다. 미국은 지난 30~40년간 공공투자를 거의 하지 않아 교육시설·교량·철도 등이 매우 낙후되어 있어 그린뉴딜사업의 타당성이 크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그동안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가 지속되어 공공투자효과가 낮을 것이 분명한데다 자칫 이명박 대통령이 질타했던 전남의 무안고속도로 톨게이트 꼴이 될 수도 있다. 젊은 시절에 건설현장을 누비며 불가능에 도전했던 대통령이기에 녹색뉴딜사업에서 과거 개발연대의 강한 시멘트냄새가 풍긴다는 지적도 일리 있어 보인다. 국정참여 올드보이들이 돋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회전도 좋고 친재벌로의 경도(傾倒)도 이해된다. 정책적 가치판단은 전적으로 국정운영자의 몫인 터에 이정부의 국정철학이 신자유주의임을 국민들이 익히 아는 탓이다. 그렇다고 박물관에나 전시됨직한 개발연대식 올드패션정책으로 일관해야 하나. 마치 새 술을 헌 부대에 담는 느낌이다. 지난시절 동반성장에 올인했다가 내수를 망쳤던 참여정부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