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어지는 엽기적인 연쇄살인으로 우리 사회가 비틀거리고 있다. 강호순의 범행을 비롯해 유영철, 정남규, 정성현 등 최근 발생한 연쇄살인범들이 보여주는 공통적인 성장배경과 살인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지켜보면 막장에 다다른 우리 사회의 암담한 현실과 만난다.
연쇄살인범들의 불우한 성장과정과 가정환경은 가정 공동체의 위기가 심각한 수준임을 보여준다. 유영철은 부모가 이혼한데 이어 자신이 이혼을 경험한 뒤 여성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을 키웠고, 강호순의 경우도 정상적인 가정의 울타리를 벗어나면서부터 성폭행과 살인에 집착하는 정신적 기질을 키운 것으로 드러났다.
"부자만 보면 죽이고 싶었다"는 정남규는 빈부격차로 빚어진 사회적 소외가 끔찍한 범죄로 이어진 사례이다. 혜진이와 예슬이를 해친 정성현 역시 뚜렷한 직업 없이 월세방에서 소외된 삶을 살면서 범죄의 길로 들어섰다.
경제, 사회적 요인으로 가정 붕괴가 급속하게 확대되고 있다. 이에 따라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격리된 채 범죄의 기질을 키우고 있는 사람들도 계속 늘어날 것이다.
연쇄살인범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대개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자)이거나 충돌조절장애자라는 것이다. 미국의 연구결과를 종합하면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지 못해 죄책감 없이 타인을 해치는 사이코패스가 북미대륙에만 300만명 이상이라고 한다. 이같은 통계를 원용하면 우리 사회에도 수십만명의 사이코패스가 언제 연쇄살인과 같은 강력범죄를 저지를지 예상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민 전체가 1% 남짓의 지뢰를 그날 그날의 운수에 맡겨 피해다녀야 하는 셈이다.
우리 곁에 연쇄살인범들이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다. 이제 연쇄살인범죄를 어쩌다 출현하는 인간 말종의 범죄로 여겨, 한 때의 소란으로 매듭지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우리사회가 연쇄살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너무 안일하다. 인간말종을 성토하는 여론이 광풍 처럼 일다가는, 범인의 1심 재판 결과도 나오기 전에 사건이 잊혀지게 마련이다. 지난해 혜진이와 예슬이를 살해하고 또 다른 여성을 해친 여죄가 밝혀졌던 정성현도 이미 우리 기억에서 희미해지고 있다.
강호순을 유영철, 정남규, 막가파, 지존파, 김대두 등 희대의 살인마들이 작성한 연쇄살인일지의 한줄로만 남긴다면 우리는 연쇄살인범의 암습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