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년 전 근대 교육기관인 의성사숙을 세우고 검여 유희강, 우현 고유섭, 조진만 전 대법원장 등 인천을 대표하는 예술가와 지식인을 배출한 취은(醉隱) 김병훈(金炳勳·1863~?) 선생의 인물 사진과 작품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관련기사 7면>

의성사숙은 1908년 취은이 지금의 창영초등학교 강당 부근에 설립한 글방으로, 한학과 동양화 등을 가르쳤다. 검여, 우현은 여기서 예술혼을 키웠으며, 판결문의 한글화를 이룩한 조진만은 취은에게서 민족의식과 청렴성을 깨쳤을 것으로 보인다.

 
 
▲ 취은의 아들 김상규씨가 운영한 신식 한의원인 대제원. 취은은 이곳에서 말년을 보냈다.
경인일보는 취은의 증손 김성한씨가 취은 사진과 작품 각각 1점씩을 보관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아들 김상규(金相奎)씨가 1920년대에 개원한, 인천 최초의 신식 한의원으로 알려진 대제원(大濟院) 사진 2장도 중구 경동의 취은이 살던 집에서 찾았다.

취은의 앉은 모습을 담은 사진틀 하단에는 나가노사진관이라고 적혀 있다. 손자 며느리 홍사숙씨는 "나가노사진관은 (일제강점기에) 중구청 앞에서 일본인이 운영한, 유명한 사진관이었다"고 전했다. 사진 속 취은은 오른팔을 원형 탁자에 기댄 채 꼿꼿한 자세로 앉아 있다. 사진으로도 고고한 선비의 풍모가 여실히 전해진다.

 
 
▲ 취은이 신유년(1921년)에 그린 문인화.
나무판에 국화와 매화를 그린 문인화에는 취은의 낙관이 선명하다. 취은이 신유년(1921년)에 그린 작품으로 취은의 나이 59세 때다.

취은은 말년을 대제원 지수재(芝壽齋)란 서재에서 보냈다. 취은은 해방을 전후한 시기 생을 마감했다고 후손들은 전했다. 대제원 사진의 발굴도 전문가들을 흥분시키고 있다. 그동안 말로만 전해지던 대제원의 초창기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사진이 없어 전문가들은 속을 태웠다.

인천학연구원 김창수 박사는 "이번에 사진과 작품 발굴로 그동안 더디게 진행된 취은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