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배 (인하대 법대 학장·객원논설위원)
일본 경제산업성이 '대학과 연구기관 등의 정보관리 가이드라인'을 발표한지 1년이 되었다. 일본은 자국의 외환관리법에 기초하여 대학이나 연구소가 지켜야 할 기술정보의 내용들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의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을 벤치마킹하여, 법률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온 지침이 우리의 주목을 끈다. 특히 기술유출의 사각지대라고 할 수 있는 대학과 연구기관에 대해 외환관리법을 빌려 규제를 시도한 점은 우리들도 반드시 검토해야 할 사안이기 때문이다.

지침은 첫째, 특허출원에 대해 신중한 판단을 요청하고 있다. 대학 등에서 연구 결과를 보호하기 위해 특허 출원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출원된 기술 정보는 공개되기 때문에 해외의 표적이 된다는 이유다. 특히 기술정보 중에는 국가안보와 직결된 예민한 기술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특허를 통한 수익과 특허 출원 내용 공개에 따른 국가안보위험을 비교 형량하여 특허 출원을 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둘째, 대학 등의 연구 성과발표에 대한 신중한 판단요구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경우도 학술논문 발표나 특허출원의 경우 외환관리법 등에 의한 허가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연구 결과가 규제 대상기술이 포함되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포함된 경우에는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연구 성과가 군사적으로 전용될 수 있다는 것을 이유로 들고 있다. 미국에서도 군사용과 상업용이 동시에 가능한 이른바 듀얼유스(Dual-use·양용기술)에 대한 보안이 문제가 되고 있다. 테러나 군사적 전용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하지만 대학에는 새로운 부담일 수밖에 없다.

셋째, 기술보호의 차원에서 유학생 등에 대한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유학생 등에게 규제 대상 기술이나 소스 코드 등을 제공하는 경우 일정한 제약이 있다는 것을 주지시키고 있다. 테러 위험국가로 의심받고 있는 국가의 유학생들이 본국에 귀국해 군수기업 등에 취업 할 가능성이 있다면, 연구실 배치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원자력·생명공학·항공우주 등 군사전용 관련 기술에 대한 연구 등의 경우 기술정보 관리를 엄격하게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은 '의도하지 않은 기술 유출'이 자국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전에 영향을 준다는 이유를 들어 대학과 연구기관의 기술유출 방지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대학에는 학문의 자유가 있고, 규제로 인해 학문연구가 위축되지 아니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이러한 지침을 얼마나 수용할 것인가 하는 점은 별도의 검토가 필요하다.

그러나 일본의 지침은 대학의 기술정보관리에 일대 혁신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변화가 필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SCI 만능주의다. 한국에서 SCI는 대학평가와 교수 능력의 잣대로 과도하게 포장된지 오래되었다. 그러나 기술보호차원에서 볼 때 SCI 등에 게재되는 것이 과연 국익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에 대해서도 재검토가 있어야 한다. 현재 한국은 청년실업대란이지만 대학실험실 등의 경우 외국학생이 없으면 운영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우수한 외국유학생을 한국에 정착시키는 제도적 장치의 마련과 함께 기술유출의 위험성이 큰 유학생이나 연수생에 대한 보완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특히 듀얼유스의 경우 과학기술 차원에서는 새로운 블루오션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비밀특허제도의 활성화와 이에 대한 현실적인 보상도 마찬가지다.

세계적 경제위기가 현실화되면서 기술개발과 기술보호 없이는 국가의 미래가 없다는 것을 이미 간파한 선진국들이 기술유출 방지를 위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그것이 바로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국경이 있다는 옛말이 다시 현실 속에서 부활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