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성춘 (언론인·전 고려대 석좌교수)
미국과 영국에서는 한 정부의 국정운영 성적이 대체로 집권 1년, 늦어도 2년까지 사이에 판가름난다는 말이 있다.

즉, 1년간의 실적을 보면 임기 말까지 그 정부의 성공여부를 내다볼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성공한 지도자인 미국의 R 레이건 대통령과 영국의 M 대처, T 블레어 총리 등은 모두 집권 1~2년에 효율적인 국정을 펼쳤다.

우리나라의 경우 5년 단임제 시행 후 역대 대통령들의 집권초기의 성적은 어떠했는가? 노태우 대통령은 5공(共)청산과 국정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열화 같은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우유부단함과 머뭇거림 속에 총체적 위기를 자초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 직후 군(軍)의 사조직 해체, 고위공직자의 재산 공개, 금융실명제를 단행해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거품인기에 취해 금융혁신과 노사협력이 실종된 신경제계획만을 주창하다가 외환위기를 초래, 국가경제를 붕괴시켰다.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거액의 공적자금을 투입해 기업과 금융의 구조조정을 통해 어느 정도 경제를 수습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기준이 석연치 않은 구조조정, 여전한 각종 지역편중, 거액의 대북비밀송금, 아들과 측근들의 비리잔치로 내정의 문란을 야기시켰다.

풍운아로 등장한 노무현 대통령은 귀중한 집권초기를 엉뚱한 일로 낭비해 국민들에게 근심을 안겨주었다. 구(舊)체제 인물들과 담쌓기, 코드인사, 한미동맹 흔들기, 민주당의 분당(分黨),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식의 품위없는 막말시리즈가 그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25일로 취임 1주년을 맞는다. 이명박 정부의 1년간 국정운영 성적에 대해 청와대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경제위기의 극복과 위기 이후 도약과 번영의 기틀을 다지는데 총력을 기울인 한 해였다"고 설명했지만 국민각계의 평가는 지극히 부정적이다.

민주당은 "점수로 따지면 F학점으로 낙제다"라고 혹평했고 여당의 지도부까지 "지난 1년간 통치기반을 제대로 구축하고 잘 활용했는지 통렬한 내부반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국민의 입장에서 봐도 이명박정부 1년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쇠고기파동, 촛불시위, 여야의 대립, 18대 국회의 개원지연, 경제위기, 입법전쟁, 용산참사 등 악재(惡材)와 위기가 연속되는 가운데 여당과 함께 통치력, 정치력, 대국민소통노력의 부족과 미숙함을 드러낸 것이다. 잇단 악재와 위기에 대해 국민의 뜻과 바람과는 달리 안이한 시각, 미숙한 대처, 늑장대응으로 실패와 혼선만을 되풀이했다.

이러한 실패와 혼선은 큰 표차로 대선서 승리, 10년 만에 진보측에서 정권을 탈환한 데 따른 지나친 자신감, 그리고 전문성과 현장감각보다 대선공로와 측근위주의 장관-참모들의 잘못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국민이 뽑아준 거대여당이 제구실을 못하고 무기력증 속에 방황하고 표류하게 한 것도 큰 작용을 했음이 분명하다.

지난 주말 당정수뇌들은 이명박정부 1년을 평가하고 25일부터 시작되는 2년 차에는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국정'을 펴기로 했다. 그러나 정부, 청와대, 여당 모두 하나도 달라지는 것 없이 '희망을 주는 국정'을 펼칠 수 있을까.

이명박정부의 최대의 중요 과제는 경제 살리기, 일자리 만들기, 민생안정, 국민통합, 남북관계의 정상화이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내각과 청와대, 집권당 모두 생각과 자세를 크게 바꿔야 한다. 적극적인 대국민소통을 비롯, 당-정부-청와대간의 긴밀한 협력과 소통, 장관들의 몸 던지기 식의 업무추진, 참모들의 직언, 여당의 무기력증 탈피와 함께 적극적인 의정활동, 국민 속에 뛰어들기에 나서야 한다.

이제 이명박정부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다. 정권의 성패(成敗)와 승부를 걸 수 있는 것은 집권2년 차 뿐이다. 또다시 지난 1년처럼 무사안일, 무기력 무소신, 때로는 무책임 속에 적당주의로 2년을 허비, 허송한다면 빨리 찾아오는 것은 레임덕(Lame Duck)뿐임을 명심해야 한다. 국민의 기다림과 인내에도 한계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