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을 손에 쥔 힘센 자와 그렇지 못한 약한 자, 돈이 있는 자와 없는 자 등 상황과 여건에 따라 예외가 천차만별로 나뉘면서, 법이 적용되는 곳이면 어떤 경우에도 작든 크든 그 이면에는 피해의식이 존재해 온 것이 사실이다. 모두에게 평등해야 할 법이 지위고하에 따라 적용을 달리하는 야누스의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다.
법무부의 용역의뢰를 받아 산업정책연구원이 우리나라의 법질서 경쟁력 지수를 부문별로 산출한 결과에서도 법의 두얼굴이 뚜렷하다. 정치인과 기업·정부보다 시민 부문이 월등히 우위를 보이고 있다. 평가대상은 66개 국가로 우리나라의 법질서 경쟁력은 중위권인 36위(49.91점)에 그쳤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6개 국가중에는 22위로 최하위 성적이다. 부문별로는 정치인이 49위(36.09점)로 법질서 경쟁력이 가장 떨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세부지표에서는 더욱 부끄러운 수치를 보인다. 국제경쟁력 62위, 부패수준 50위에 머물렀으며, 정부와 기업 역시 각각 35위(47.24점), 42위(45.85점)로 중하위를 면치 못했다. 반면 시민은 22위(70.47점)로 비교적 후한 점수를 받아 상대적으로 높은 순위에 올랐다.
법을 만들고 법을 집행하는, 우월적 지위에 있는 계층에서 법을 지키려는 의식이 일반 시민보다 못하다는 반증이다. 법을 지키지 않아도 법망을 피할 수 있는 사실상의 면죄부가 이들에게 부여돼 있다는 불량한 의식이 존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간 죄를 저지른 이들에게 적용된 형량과 복권의 과정에서 이러한 예가 숱하게 반복돼 온 것을 인지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떼법문화 청산' 등 법질서 확립을 강조해 온 정부의 법적용은 일반 시민에게만 미치는, 즉 한계를 정해 놓고 법을 집행하려는 이상한 법이 상례화 하고 있다. 준법질서는 일반 시민의 몫에 불과할 뿐이다.
산업정책연구원은 법질서 경쟁력 향상을 위한 해법으로 순위가 낮은 부문에 정책적 우선 순위를 둘 것을 제안하고 있다.
정치인부터 시민 부문까지 4단계에 걸쳐 법질서 경쟁력을 높여 나간다면 현재 종합순위 36위에서 2013년에는 9위(점수 76.14)로 도약할 수 있다는 전망도 함께 내놓았다. 참고 대상국가로는 싱가포르(정치인·정부), 홍콩(기업), 노르웨이(시민) 등을 꼽았다.
또한 "최근 불거진 여러 사회질서 문제들의 원인이 시민의식보다는 정부나 정치인, 기업에 더 큰 문제가 있음을 밝혀낸 것"이라며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면 불심검문, 불법시위 금지 등과 같이 시민을 계도하는 것보다는 정부와 정치인, 기업이 먼저 청렴해야 한다"고 부언했다.
문제는 용역결과를 받아들여 바로잡으려는 움직임이 없어 보인다는 데 있다. 한 예로 법무부는 지난해 11월 산업정책연구원의 용역결과를 제출받고 보완 요청을 했다고 한다. 정부가 기대와는 다른 상반된 결과가 나오자 이에 대한 후속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법(法)의 고자(古字)는 법()으로, '수(水), 치(), 거(去)' 3자가 합쳐진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수'는 수면과 같이 공평함이다. 낮은 곳을 향해 가며, 아무리 깊고 험하고 기울어 있어도 골고루 미친다. '치'는 해태라는 전설적 동물로 시비곡직(是非曲直·옳고 그르고 굽고 곧음)을 가리는 일을 맡은, 정의를 실현하는 상징이다. 또한 불을 삼키는 동물로 불붙은 분쟁을 가라앉힌다고 여겼다. '거'는 악을 제거하는, 응징적인 강제성을 나타낸다.
이와같은 법자의 태생원리를 알고 새기기만 해도 법질서 경쟁력이 중하위에서 맴도는 일은 없을 성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