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호(시사평론가·언론광장공동대표)
IMF(국제통화기금) 사태는 재벌기업의 집단부실화가 금융산업의 집단부실화로 이어져 일어난 경제파탄이다. 재벌들이 은행돈을 끌어다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했으나 빚을 갚지 못해 은행금고가 텅텅 비어 일어난 사태다.

그 틈에 외국은행들이 국내은행에 빌려준 돈을 거둬 가자 달러가 바닥나 당장 석유도 식량도 못 사올 처지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IMF한테 고금리의 구제금융을 얻고 그 대가로 경제주권을 내주었다.

기업의 집단도산에 따라 대량실업이 발생했다. 국민의 피땀으로 169조원이란 어마어마한 공적자금을 만들어 금융권과 재벌기업에 퍼부었다. 은행, 기업, 토지, 건물, 주식을 외국자본에 헐값에 팔아 넘겨 IMF한테 빌린 돈을 갚았다.

10년이 지나 나라경제가 겉으로는 멀쩡한듯 보이지만 속으로는 골병이 들어 많은 국민들이 아직도 그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본산지인 미국 월 스트리트에서 금융위기가 터지더니 세계적 경제위기로 번져 또 절망의 시대가 닥쳐왔다. 이것은 시장주의와 규제완화를 내걸고 20년 이상 세계경제 질서를 재편ㅔ해온 신자유주의의 실패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세계와는 거꾸로 가고 있다.

국민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를 골격으로 하는 경제-사회정책을 입법전쟁이란 말을 쓰면서 밀어붙인다.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경계를 없애 재벌은행을 만들려고 한다. 은행법은 기업의 소유한도를 4%로 제한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을 10%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지분 10%는 은행지배가 가능한 수준이다.

은행이 재벌의 사금고로 전락할 게 너무 뻔하다. 방화벽을 헐어내면 한 쪽의 부실이 다른 쪽으로 전이된다. 금융업에 진출한 미국의 GM과 GE도 그 탓에 더 큰 타격을 받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는지 이른바 사모펀드에게는 100% 은행소유를 허용하겠다고 한다. 이에 앞서 사모펀드의 기업출자지분을 30%로 늘린 바 있다. 재벌이 편법을 동원하면 사모펀드를 통해 은행장악이 가능하다. 사모펀드란 기업을 사서 가치를 높인 다음 되팔아 수익을 올리는 기업사냥꾼이다. 그런데 공공성이 높은 은행을 사모펀드의 투기대상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정부소유의 은행을 민영화하겠다고 한다. 산업은행, 우리은행, 기업은행 등을 재벌의 먹잇감으로 내놓겠다는 소리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을 세계적인 투자은행으로 만든다고 한다. 미국 금융위기의 진앙지는 바로 투자은행이다.

몰락의 길을 보면서도 그것을 본보기로 삼는다는 것이다. 미국은 최대은행인 시티뱅크의 국유화를 추진하고 있다. 유럽에서도 은행 국유화 바람이 드세게 불고 있다.

재벌에게 방송도 주겠다고 한다. MBC 같은 지상파 방송은 지분의 20%를 갖도록 하겠다고 한다.

또 지상파 방송이나 다름없는 종합편성채널과 YTN 같은 보도전문채널은 49%, 위성방송은 100%를 소유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방송사 소유한도를 30%에서 49%로 늘린다고 한다. 전파는 국민의 재산이다.

그런데 그것을 재벌의 소유와 세습의 대상으로 만들려는 것이다. 재벌이 방송을 사유화해 사업의 방패로 쓰고 경제정책을 일반국민이 아닌 재벌 위주로 오도하면 경제체제는 더욱 왜곡된다.

출자총액제한제도란 재벌의 무분별한 사업확장을 억제해 계열사 재무구조의 부실화를 막기 위한 장치다. 자산합계 10조원 이상 재벌 계열사가 다른 계열사에 출자할 경우 한도를 순자산의 40%로 제한하는 것이다.

IMF 사태가 나자 재벌의 무모한 사업확장을 막으려고 2001년 다시 도입했는데 그것을 없애 버렸다. 재벌의 은행, 방송 진출을 가로 막는 장애물을 제거한 셈이다.

경제살리기법으로 거짓 포장된 친재벌법은 국민경제에 독약이 될 수 있다. IMF 사태가 그것을 말하고도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