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석구 (가천의과학대 총장· 철학박사)
미디어에 연일 글로벌 경제 위기니, 취업 대란이니 하는 보도가 끊이지 않는다. 올해 경제성장 전망치도 경제연구소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제로에서 마이너스 성장까지 어둡기만 하다. 이대로 간다면 한두 해 사이에 쉽게 회복세로 돌아설 것 같지도 않다. 미국발(發) 금융 위기의 파장이 가히 파죽지세다. 그 여파가 4월쯤에는 우리의 실물경제 바닥까지 미칠 것이라니, 걱정은 깊어만 간다.

대학이라고 이러한 위기의 무풍지대일 수는 없다. 크고 작은 변화가 이어지고 있다. 작게는 운용계획 수정에서부터, 크게는 학과 구조조정, 취업대책 수립에 이르기까지 위기를 헤쳐 나갈 다각적인 방안을 강구 중이다. 산학(産學)간 협력과 상생의 영역을 넓히려는 노력도 충격을 완화하려는 노력의 하나다.

그러나 오늘의 위기는 대학이 내부 개혁에 매달린다고 치유되는 제한적 상황이 아니다. 어떤 형태로든 대학의 참여가 절실하다. 우리 사회가 백지장도 맞들어야 하는 절박한 위기국면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대학의 역할과 책임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학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배움터라는 차원을 넘어 일정 부분 책무를 공유하고 있는 사회의 구성원인 까닭이다.

사실 전 세계적으로 5천100만개 일자리가 사라지고, 우리도 'IMF 사태' 이후 8년 만에 실업자 100만 시대를 맞고 있다. 출근길에 종종 듣는 라디오 대담 프로에서는 실직자들의 딱한 처지를 알리는 인터뷰 기사 일색이다. '용기를 잃지마라'는 격려와 함께 재취업 안내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청취자들의 여러 사연을 소개하는 신춘 프로그램에서도 갑작스런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고 전업주부의 일을 하고 있다는 가장들의 편지가 부쩍 늘어난 것 같다.

마침, 서울대가 퇴직한 기업체 임직원들을 초빙교원으로 활용하고 실직자들을 대상으로 재취업 교육을 실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짧은 시간에,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질 수는 없겠지만, 의미있는 출발이 아닐 수 없다. 전국 4년제 199개 대학이 모두 서울대처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시설 여건이나 인적 구성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학의 참여는 당위(當爲)라고 본다. 우선 학교 주변 환경에 맞는 작은 일부터 찾아 시작해 보는 게 필요할 것 같다.

우리 가천의과학대학교 주변에는 서민 아파트가 두세 곳 있다. 대부분 맞벌이 부부들이어서 방과후에는 아이들만 생활하는 가정이 많다는 얘기를 구청 관계자로부터 듣고 있다.

이 아이들을 위해 현재 교내 동아리와 도우미 학생들을 활용한 '대학생 멘토링'을 추진하고 있다. 교내 인터넷을 활용한 학습 지도 방안도 구상 중이다. 지역사회와 유대 강화뿐 아니라, '가난의 대물림'을 막는 것 또한 대학의 역할이기도 하다.

우리 대학은 인천 연수캠퍼스와 강화도 강화캠퍼스 등 두 캠퍼스가 운영되고 있다. 새해 들어 강화캠퍼스가 위치한 길상면과 실직 주민을 활용하기 위한 협력 체계를 구축했다. 학교 식당, 시설관리와 같은 기초적인 부분에 길상면에 거주하는 실직 가장을 최우선적으로 채용하기로 한 것이다. 벌써 성과를 내고 있다.

또 세계 수준의 연구 중심 대학(WCU)으로 선정된 이길여 암·당뇨연구원과 뇌과학연구소를 통해 기여하는 방안도 마련하고 있다. 현재 주부 연구원 프로그램과 같은 아이디어가 줄을 잇고 있어 머지않아 구체적인 활용 계획이 수면 위로 떠오를 것 같다.

대학은 사회의 버팀목으로서 역할도 갖고 있다. 현실과 실용을 외면한 오로지 '학문의 성역'과 같은 인식으로는 대학의 발전을 기약할 수 없다. 힘든 시절을 견디고 있는 국민을 돕고 고통을 분담하려는 모습을 보일 때, 대학은 신뢰와 사랑을 받는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한국 야구대표팀이 결승전에 진출했다는 낭보로 모처럼 국민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고 있다. 지난 1999년 IMF 때 박세리가 US오픈에서 그랬듯이, 우승으로 이어져 온 나라에 희망의 꽃을 피웠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