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5일은 우리의 대표적 민족종교의 하나인 천도교가 창도 150년을 맞는 날이다. '사람이 곧 한울'이라는 인내천(人乃天)사상과 '양반도 천민도 모두 한울님을 모시고 있으므로 세상의 모든 사람은 근원적으로 모두 평등하다'는 시천주(侍天主)의 가르침으로 민중들로부터 적극 호응을 얻었던 천도교의 제1세 교조는 수운 최제우(1824~1864)다.

천도교에선 대신사(大神師)라 불리는 최제우가 1860년 4월 5일 한울님으로부터 우주본체의 영적능력인 무극대도를 받은 날이라 하여 이날을 창도일로 정하고 천일(天日)이라고 해서 교계 최대의 기념일로 삼아왔다. 수운의 사상은 동학민중항쟁과 3·1만세운동, 독립운동, 어린이운동, 여성운동으로 이어지는 근대사의 여명을 열기도 했다. 천도교는 수운에 이어 최시형, 의암 손병희(1861~1922)로 이어지며 교세를 크게 떨쳐 3·1만세운동 때는 우리나라 2천만 인구 중 천도교인이 300만명에 이를 정도로 신도가 가장 많은 종교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 말 사교로 나라를 문란케 한다는 봉건체제와 일본제국주의의 명분에 밀려 천도교는 무자비한 탄압을 받게 된다. 수운이 포교 3년 만인 1864년 세상을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대구 장대에서 참형을 당했고, 대도를 물려받아 동학혁명을 이끌었던 해월도 1898년 원주에서 체포돼 서울에서 수운과 같은 길을 걷게 된다. 민족대표 33인으로 3·1운동을 주도한 의암도 경찰에 체포돼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다 출감한 뒤 후유증으로 세상을 떴다. 천도교의 1·2·3교조는 불행히도 모두 순도했고 동학혁명 때 죽임을 당한 교도만도 30만명에 이른다.

분단 후 쇠락을 거듭하던 천도교는 잠시 성장기를 맞기도 했으나 1976년 최덕신 전 교령, 1997년 오익제 전 교령 등이 잇따라 월북한 사건으로 성장세가 멈춰져 현재 교인은 10만여명으로 줄어든 상태라고 한다. 천도교는 오는 5일을 전후해 동학의 발상지인 경주 용담정성지에서 천일 기념식을 봉행하고 최시형 동상이 있는 황성공원에서 참배식을 갖는 등 다양한 행사로 재도약을 꾀한다.

/김화양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