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사정관제는 본래 미국 대학에서 시작됐다. 그 역사가 족히 백년은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 각 대학들이 그것을 별 준비도 없이 하루아침에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우겠다고 소란을 떨어 부작용이 걱정된다. 결론부터 말하면 미국식 입학사정관제를 과신하지 않았으면 한다. 장점을 좀 따오는 것까지는 좋지만, 그것을 입학사정의 교과서인 양 몽땅 카피하지 말라는 얘기다.
미국 입학사정관제 전형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섹션의 다양화가 장점이다. 섹션은 우리로 치면 수능과 같은 SAT 성적, 학생부 성적, 자기소개서, 교사추천서, 과외활동, 각종 대회 입상경력, 봉사활동 등이다. 보통 10~13개의 섹션으로 자른다. 특별하게 인터뷰해야 할 수험생을 제외하고는 제출된 전형자료를 토대로 한다. 대체로 좋은 대학에서는 SAT를 그냥 참고 자료로 쓰고, 역시 집중적으로 보는 것은 학생부 성적이다. 우리 고교와 같이 '인플레이 된 성적'이 없기 때문에 이를 그대로 반영한다. 그 다음은 자기소개서다. 어떤 비전을 가지고 어떻게 공부해서 어떤 인물이 되겠다는 것이 줄기다. 가중치가 높은 종목이다. 교사의 추천서도 중요하다. 사회적으로 선생님에 대한 신뢰가 두텁기 때문에 그들의 평가를 그대로 믿는다. 상 중에서 최고로 치는 상은 교사가 주는 상이다. '발전 가능성이 있는 학생'이라든가, '잠재적 능력을 가진 학생'이라든가 하는 평가를 받으면 최고다. 봉사활동, 각종 대회 입상도 좋은 점수의 자료다. 어떤 테마에 집중할 것인가는 입학사정관 마음대로다.
또 하나는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 대학의 입학사정관은 전문적으로 입학업무만 보고, 모든 학생을 뽑는 권한을 갖는다는 점이다. 직원이 전형을 진행하고, 교수가 입학사정을 하는 우리와 사뭇 다르다. 이들은 전문가 집단에 의해 좋은 학생 뽑는 방법을 배우고 상당기간 전형 테크닉을 연마한 뒤 실전에 배치된다. 전형자료만으로도 어떤 유형의 사람인가를 족집게처럼 집어내는 교육을 집중적으로 받는다. 입학사정관도 다 전문분야가 정해져 있는데, 이를 테면 음악, 미술, 스포츠, 의학, 철학 등등 아주 다양하다. 전문지식을 요하는 경우에는 임시로 입학사정관을 채용할 때도 있다.
미국식 입학사정관제에서 우리가 따올 것은 두 가지 정도라고 본다. 사실 우리나라 대학도 섹션별로 유형을 나눌 수 있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게 없다. 다만, 우리가 본받아야 할 것은 '교사에 대한 신뢰' 구축이다. '성적 인플레이' '뻥 튀기 추천서' 등등, 교사들의 손에 의해 부정확하게 작성되는 그 모든 입시전형 자료를 말한다. 고교에서의 모든 평가를 대학에서 완전하게 믿고 존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역으로 대학도 마찬가지다. 미국식 입학사정관제가 우수 인재를 뽑는 데 좋은 장점을 지닌 것만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을 만능의 '인재 자판기'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준비가 부실한 상황에서 어떻게 운영하는 것이 최선일까. 입학사정관제로 뽑는 정원을 가급적 최소화하는 것이 상책이다.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 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엉성한 입학사정관제로 신입생을 마구 뽑아선 안 된다. 수시 특별전형이나 정원 외 특별전형 같은 것을 입학사정관제로 슬쩍 변형시키는 경우가 그런 것들이다. 따라서 입학사정의 신뢰와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이고, 정착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입시는 상대적 개념이라 자칫하면 불이익을 받는 수험생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이 투명해야 한다. '무늬만 입학사정관제'를 남발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가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입학사정관제를 잘못 키우면 독버섯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