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이 13억원을 받는 동안 대통령인 남편은 몰랐다?' '박연차게이트엔 누가누가 거론된다더라' '장자연리스트는 누구라더라'…. 요즘 신문과 방송의 1면이나 사회면을 장식하는 머리기사들이다. 하룻밤만 지새고 나면 새로운 인물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얽혀나오고 국민들은 귀를 솔깃한다. 물론 언론은 사회의 이슈를 추적보도하고 진실을 알리는 것이 사명이다. 궁금해하는 독자들의 갈증을 풀어주는 것 또한 언론의 기능이기에 그렇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과 아들이 검찰조사를 받고, 노 전 대통령은 홈페이지에 해명 아닌 해명을 하느라 기(?)를 쓰고 있는 모습들을 보면서 초미의 관심이 되고 있다. 특히나 재임시절 '청탁을 하거나 부정부패에 연루되면 패가망신을 시키겠다'던 사람이 부인이 됐든, 가족이 됐든 측근으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하니 국민들은 배신감을 느끼다 못해 분노마저 표출하고 있다. 뉴스의 진원지인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경우 노무현 전 대통령의 든든한 후원자였으니 가히 메가톤급 폭발력을 갖고 있다. 그의 돈을 받았다는 리스트에는 정치권의 실세들이 여럿 거론된다. 그를 지지하고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던 정치인들마저 얼굴을 들 수가 없어 외부활동을 삼간 채 숨을 죽이고 있다.

여야를 구분하지 않고 부산 경남 그리고 서울까지 휘젓고 다닌 박연차 회장이고 보면 몇 푼이라도 받은 정치인이나 공무원들은 전전긍긍하면서 잠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언제 또 그리고 누구의 이름을 불어댈지 그의 입만 쳐다보는 불안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측은한 생각마저 든다. 검은 돈이라는 것은 받고 나면 영원히 마음 한 구석에 가시처럼 도사리고 있게 마련이다. 돈을 준 사람에게도 평생 마음의 빚을 지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아무튼 이번 만큼은 검찰이 성역없는 수사를 통해 누구든지 '패가망신'이 어떤 것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언론의 톱뉴스를 장식하는 또 하나의 사건은 장자연 리스트다. 유력언론사 대표가 리스트에 올라와 있다는 이야기가 돌자 해당 언론사는 실명을 거론한 국회의원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했다. 떠도는 리스트에는 방송계 유력 인사, 모 그룹의 회장들까지 들어있다. 미모의 한 탤런트의 죽음을 놓고 진실공방이 한창인 것이다. 연루설이 나도는 보수 신문의 사실무근 주장과 이를 치밀하게 폭로하고 보도하는 중도·진보 신문, 그리고 방송의 보도전 속에는 모종의 음모론마저 도사리고 있다. 살인마 강호순의 얼굴을 공개해야 한다고 언론들이 주장했듯이 하루빨리 수사를 매듭지어 장자연리스트를 공개함이 마땅하다. 이 또한 국민들의 알권리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봄맞이 대청소중이다. 두 개의 리스트를 통해 대한민국의 부패스캔들과 상류층의 섹스 스캔들을 청소하고 있다. 누구를 가리지 않고 철저한 수사를 통해 가려낸다면 대한민국은 깨끗한 나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한나라당 중진 국회의원의 발언내용이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이번 만큼은 성역없는 수사가 이뤄져 대한민국이 거듭났으면 국민들은 더 바랄게 없다.

그러나 국민들에게는 대청소보다는 살림살이가 더 중요하다. 깨끗한 나라도 좋지만 편하게 좀 잘 먹고, 잘 사는게 서민들의 소박한 소망이다.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현 정권의 실세들은 '리스트 공화국'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즐기고만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100만명이 직장을 잃고 떠돌아다니고, 장사가 안된다고 아우성치는 민초들의 함성을 귀담아들어 경제를 살리는 일이 우선돼야 한다. 경세제민(經世濟民·세상을 잘 다스려 백성을 구한다)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따뜻하게 맞는 진정한 봄은 경기침체로 고통받는 서민들의 '얼어붙은' 가슴을 녹여줄 때 가능한 것이다. 이 정권은 '리스트' 타령에 서민들 가슴만 더 찢어진다는 사실을 명심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