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길게 어려운 경제 상황을 늘어놓은 것은, 축제와 경기와의 상관관계 때문이다. 대개 주머니가 넉넉하고, 살림이 펴져야 바깥으로 눈을 돌리는 여유가 생긴다. 축제가 열리거나 명절 때, 우리가 칙칙한 무채색의 옷을 벗고 색깔이 화사한 한복과 때때옷을 입은 채 나들이를 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어린 시절, 이웃 잔치나 결혼식 때 장롱 깊숙이 넣어둔 꼬까옷을 꺼내어 입고, 으스대며 나들이 한 기억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으리라.
축제는 여유와 넉넉함이 어우러져야 제맛이다. '80일간의 미래도시 이야기'로 꾸며지는 인천 세계도시축전을 앞두고 국내외 경제 사정이 걱정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재원확보 방안에서부터 국제적인 주목도, 참여 열기, 행사규모 축소 여부에 이르기까지 두루 신경이 쓰인다. 우리 가천길재단과 가천의과학대학이 도시축전을 이끌어 갈 시민 참여의 중심축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사실 국가 역량으로 볼 때, 이탈리아의 밀라노나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처럼 우리도 반듯한 도시를 가꿔 세계에 내놓을 만한 때도 됐다. 도시가 곧 국가 경쟁력으로 표징되는 세기에 살면서 뒤늦은 감마저 없지 않다.
인천은 '한국 최초'의 도시이다. 지난 1883년에 한적한 제물포항으로 개항한 이래 1903년 '한국 최초'로 불을 밝힌 팔미도 등대가 그 시작이다. 세계도시축전의 해인 올 1월 1일을 맞아 106년 만에 일반에 공개됐다. 지금은 터만 남아있지만, 1887년 문을 연 그리스풍의 대불호텔은 최초의 서구식 호텔로 알려져 있다. 초등학교 시절, 소풍 때 김밥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단짝이었던 사이다도 1905년 인천에서 처음 생산됐다고 한다. 같은 해, 인천시 중구 '차이나타운'에서 영업을 하던 '공화춘'에서 부두 노동자들을 위한 식사대용으로 국수에 볶은 춘장을 얹어 만든, 이른바 '자장면'은 100년 넘게 인천과 그 맥을 같이해 오고 있다. 정부의 물가지수 산정 음식인 자장면처럼 서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음식이 또 있는가.
이러한 저변의 생활사야말로 인천의 힘이고, 역사이고, 정체성이 아닐 수 없다. 오늘 송도 청라 영종에 경제자유구역이 들어서고, 야심찬 151층 인천타워나 오는 10월 말 준공 예정인 총길이 21.38㎞인, 사장교 교량으로는 세계 5위 규모인 인천대교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한국 근·현대사의 격랑을 헤쳐온 인천의 힘이며, 도전이다. 스스로 지닌 역동성으로 세계 도시로서 비전을 가꿔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 저력은 자장면과 사이다의 탄생 배경에서 보듯이 여유와 넉넉함만이 아닌, 나눔과 참여의 힘이다. 우리는 자라면서 자장면을 혼자 먹어본 적이 없다. 나무젓가락으로 면발을 똘똘 말아 서로 나눠 먹었다. 사이다 역시 한 모금에 들이키지 않았다. 그 사이다마저도 챙겨오지 못한 가난한 친구를 위해, 마시다 남은 병에 따개를 덧씌워 김빠진 사이다일망정 서로 나눠 마셨다. 마을에 축제가 있으면 잘사는 사람들은 잘사는 사람대로, 못사는 사람들은 또 그 나름의 참여와 기여로 축제를 이끌었고, 온 마을 잔치로 승화시켜 온 게 우리 문화의 지혜이다. 이러한 나눔과 참여의 정신이야말로 축제의 생명력이고, 인천은 그 힘이 응축된 곳이다.
나는 인천 세계도시 축전의 성공을 확신한다. 또 축전의 내용이 지금껏 보여준 많은 지방도시의 축제와 달라서 좋다. 전시용 축제가 끝난 뒤, 몇 년이 지나면 각종 기념 시설물들이 흉물스러운 천덕꾸러기로 남는 지방도시들과 달리 여러 흥미로운 볼거리와 함께, 도시 전체의 미래와 발전 모델을 내용에 담았기 때문이다. 인천, 참, 힘있게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