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40년전인 1970년 4월 22일 워싱턴 광장에는 200만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었다. 그들은 대통령 취임을 축하하기 위해서도, 당시 한창 진행중인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그들의 바람은 지구의 환경을 지키자는 당시에는 생소한 이슈에 공감하여 모인 사람들이었다.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과 전 해에 발생한 캘리포니아의 기름 유출 사고로 사람들이 불안해 하는 상황에서 게이로드 넬슨 미국 상원의원이 제안하고 당시 하버드대학교 학생인 데니스 헤이즈가 조직한 지구의 날이 탄생한 첫 해인 것이다.
2천개가 넘는 대학과 1만명이 넘는 고등학교, 수천 개의 지역 공동체가 함께하여 미국 전역에서 2천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한 이 행사는 당시 3억명이 채 안되는 미국 인구를 생각한다면 분명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 행사는 전세계로 퍼져 나가 40년이 지난 이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매년 180여 나라가 참여하고 전세계에서 5억명이 넘는 사람들이 지구의 환경문제를 고민하고 해결을 촉구하기 위하여 모이는 행사로 발전하였다. 미국의 시카고에서 발생한 5월 1일 노동자들의 데모가 노동절이 되어 전세계 노동자들의 축제가 된 것과 마찬가지다. 6월 5일이 유엔이 정한 환경의 날이지만 이는 각국 정부의 기념식일 뿐 민간단체와 시민이 자발적으로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하는 행사로서는 가장 거대한 행사인 것이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 깊숙이 들어가 있을 때였다. 전세계적으로는 냉전이 최고조에 이르렀고 미국 전역에서는 반전의 데모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을 때였다. 이때 지구환경문제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일 것이라는 것을 누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이를 계기로 미국에서는 EPA(미국 환경청)가 생기고 대기보전법이나 수질보전법이 만들어졌으니 분명 대단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에 수만명이 참여하여 남산껴안기 행사를 한 이래 매년 이 행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원래 지구의 날의 취지가 점점 퇴색해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한 번의 행사로 끝나고 있을 뿐 많은 사람들이 지구환경문제를 고민하는 계기로 만들고있지 못하다. 더구나 정부에서는 수질 개선을 위한다는 명목하에 한반도의 생태계를 송두리째 파괴하는 4대강 죽이기를 진행하고 있고 곳곳에 골프장이 건설되고 있으며 각종 환경규제가 경제살리기를 위한다는 미명하에 완화되고 있다. 40년전의 미국의 상황과는 완전히 거꾸로 가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가 살고있는 지구는 지금 지구온난화와 오존층 파괴, 생물종의 대규모 멸종, 급속한 사막화, 유해 화학물질의 확산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투발루 공화국은 상승하는 해수면으로 자국의 영토를 포기하는 선언을 하였고 수많은 환경난민이 자신들이 살던 터전에서 쫓겨나 헤매고 있다. 환경오염이 없을거라고 믿었던 북극해나 남극해에서도 생태계에 치명적인 화학물질이 발견되며 지구 역사상 유례 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지구에 살고있는 생물들이 사라져가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지구 생태계의 한 부분일 뿐인 인간이 저지르고 있는 현상이다. 이제 더이상 방치하거나 악화시켜서는 안되는 상황에 다다른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 지구인의 노력에 동참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자 지구라는 별에 살고 있는 우리의 생존 근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