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 (인하대교수, 객원논설위원)
국회가 지방행정체제개편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지방행정구역개편을 추진하려고 한다. 지방행정체제개편은 지방자치행정구역과 지방자치행정계층 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의 권한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지방행정체제는 수직적인 측면에서 국가 전체의 근간을 이룬다. 지방행정체제개편은 단순히 지방행정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국가의 근간을 개편하는 중대한 문제이다. 중앙정부의 업무수행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앙-지방행정체제개편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 한번 잘못되면 다시 복원하는 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막대한 비용을 수반한다. 따라서 시행착오를 줄이고 올바른 방향을 찾기 위한 진지한 담론의 형성이 필요하다.

정치권에서는 2005년부터 도를 폐지하고 전국을 40~70개의 통합광역시로 재편하는 방안을 마련하여 강행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방안은 정치권에서도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려울뿐만 아니라 학계나 시민사회에서도 심도있게 논의된 적이 없다. 정치권에서 구체적인 검증자료나 외국의 사례를 참조함도 없이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한국의 지방행정체제에 크고 작은 문제가 있다는 데는 대체적인 공감대가 성립되어 있지만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해서는 입장이 극단적으로 다르다. 이는 마치 몸에 병이 있다는 것은 모두 인정하지만 병의 근원에 대해서는 진찰이 완전히 다른 것과 같다. 진찰이 틀리면 아무리 좋은 약을 써도 병이 낫지 않는다. 오히려 악화될 수도 있다. 더구나 지방행정체제와 같이 중대한 국가의 근간을 논의함에 있어서, 문제의 원인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공감대의 형성도 없이 수술부터 하고 보자는 정치권의 접근방식에 대해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이를 논의함에 있어서는 시대적인 흐름과 요구가 반영되어야 한다. 오늘날 전세계는 국경을 넘는 지역간 경쟁을 강화하고 있다. 주민과 기업과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지역간 경쟁이다. 이에 지역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지역역량을 강화시키고 있다. 이에 지역의 규모를 500만 내지 1천500만명 수준에서 재편하고 있다. 우리 정치권은 지방자치단체의 규모를 단층제로 하되 50만 혹은 100만명 전후로 하려고 하고 있다. 이는 지역경쟁력을 강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또한 선진국에서는 기초지방정부를주민 접근성을 고려하여 대개 평균적으로 5천명 내지 1만명 규모로 유지하고 있다. 한국의 기초지방정부의 주민 수는 20만 명에 이르고 있으며 주민의 접근성과 편의성은 이미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서는 몇 개의 시·군을 통합하는 방안을 강행하려고 한다. 이는 지방자치의 핵심인 풀뿌리자치 내지 기초자치의 포기라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시·도분할로 지역경쟁력과 국가경쟁력은 떨어지고 시·군폐지로 주민불편만 늘어날 수 있는 방안이다.

지방행정체제개편 논의는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정치적 이해관계와 포퓰리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정치권이 주도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이제부터라도 학계와 시민사회, 지역사회가 주도가 되어 개방적이고 진지한 논의를 해야 한다. 향후 100년의 시대변화와 시대적인 요구를 감안하고 우리의 현실을 반영한 개편방안을 마련하여야 한다. 또한 헌법개정과 통일문제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어떤 방안이 지역과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고 동시에 지역공동체와 주민의 생활복지를 높이는데 기여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와 담론이 형성되어야 한다. 정치권은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지방행정체제를 일방적으로 졸속하게 개편해서는 안된다. 학계와 시민사회, 지역사회의 담론이 숙성하여 대체적인 공감대가 형성될 때 비로소 정치권이 추진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사리에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