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진현 (인천민예총정책위원장)
다음달이면 5만원권 지폐가 발행된다. 모델은 신사임당이다. 5만원권 지폐의 발행을 예정하고 그 모델을 확정하기까지 많은 논란이 있었고 곧 발행될 상황에서도 여전히 논란은 가시지 않고 있지만 신사임당이 모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던 터라 살짝 조바심을 겪었었다. 사실 남하고 비교해서 이러니저러니 하는 것이 쑥스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일본돈 5천엔권 모델이 천재적인 일본 여성작가 히구치 이치요(통口一葉)인 것을 보면서 우리나라 지폐에는 언제나 여성인물이 모델로 등장하게 될 것인가 여자로서 은근히 자존심 상하는 면도 없지 않았었다. 게다가 조선 후기 송시열을 수장으로 하는 노론 일파가 신사임당을 이상화하기 시작한 데는 송나라 때의 성리학자 상곡군 정호의 모자와 견주어 성리학을 조선 유일사상으로 만들기 위한 저의가 깔려 있었다는 비판에는 수긍할 수밖에 없는 사실(史實) 지적도 있어서 이를 빌미로 신사임당 모델 입성에 동티가 날까 염려스러운 점도 없지 않았다.

사실 신사임당은 가족에 대한 헌신을 기준으로 삼고 있는 오늘날의 현모양처 상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인물이다. 신사임당은 1522년 남편 이원수와 강릉 친가에서 혼인한 후 친부 신명화의 삼년상을 치르고 3년이 지나서야 시어머니와 상면하였다. 시가에 정착한 것은 혼인 19년 후였고 정착한 이유도 시어머니가 늙어 가사를 돌볼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게다가 남편 이원수의 잘못을 묵과하지 않고 반드시 옳은 도리로 간하였다고 하니 성품 또한 만만치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니 이를 요즘의 시각으로 해석하면 어떠할까? 결혼 후에도 친정에 머물러 시집 일은 몰라라했다고, 남편이 하는 일에 일일이 참견을 하고, 내조는커녕 남편을 기죽이고 의기소침하게 했다고 비난하지는 않을까?

그러나 조선 최고의 학자였던 아들 율곡은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여 '선비행장(先비行狀, 어머니 일대기)'으로 남겼다. 결혼 직후 사망한 친정 아버지의 3년상을 치르기까지 친가에 머물렀던 일이나 아들이 없어 의지할 곳 없던 친정 부모를 모시고 있었던 것을 당연히 여겨 어머니의 효성이 지극했다고 기록하였다. 부모를 섬김에 친가와 시댁을 구분하지 않았던 어머니의 행적을 높이 기렸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 이원수 또한 어머니의 조언을 받아들여 행동을 고쳤다고 하였으니 잘못을 지적당한 남편 이원수가 이를 수치로 여겼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즉 남편은 아내의 조언을 들어 행동을 고치고 옳은 도리를 수용하였으며 이를 아들 율곡은 아름다운 일로 여겨 기록하였던 것이다.

이로써 여성의 예술적 재능과 성과를 남기는 데 인색했던 조선시대, 가족의 신뢰와 존경 속에서 사임당의 예술성은 예외적이지만 긍정적인 빛을 발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들 율곡은 어머니의 행장을 통해 어머니에 대한 깊은 존경을 표하였고 아울러 어머니의 예술적 재능과 그 작품을 전하여 어머니의 이름을 후세에 남겼던 것이다.

신사임당은 옛날의 눈으로 봐도, 지금의 눈으로 봐도 멋진 여성이었다. 그 스스로 시비(是非)와 선악(善惡), 호오(好惡)가 분명하여 타협하지 않았다. 이는 일상적인 자기 실천의 지침이었고 뛰어난 예술적 성취의 바탕이 되었다. 얼핏 까다로운 것으로 곡해될 수 있는 그녀의 강직한 성격과 행적은 바로 한 사람의 예술가, 신사임당의 철학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그녀가 이렇게 '누가 뭐래도' 멋진 여성으로, 당대를 넘어 조선 후기를 거쳐 현대에까지 계속 기억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가족, 그녀의 가문이 그녀를 자랑스럽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신사임당과 비교되지만 이 같은 행운을 갖지 못했던 황진이나 허난설헌 등을 생각하면 더욱 중요해진다. 그녀들의 재능과 작품이 사임당에 미치지 못했던 것은 아니로되 서출에 대한 차별로 기녀로 나설 수밖에 없었던 황진이, 남편의 몰이해로 고독에 시달리다가 꽃다운 나이에 스러져 간 허난설헌의 생애는 사임당과 비교하면 더욱 비극적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5만원권 모델 사임당은 사임당 개인에 그치지 않는다. 그녀의 삶을 둘러싼 각종 논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며 계속되어야만 할 것이다. 일상에서 새로운 사유와 논쟁을 제공하게 될 새로운 화폐 모델 신사임당을 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