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년 때 담임을 맡았던 한 제자가 올해도 어김없이 꽃바구니를 보내왔다. 스승의 날이면 전화라도 해 주는 몇 안 되는 제자 중의 한 사람이다. 비록 스타는 아니었지만 연극배우로 활동했었고, 지금은 두 딸의 학부모로, 현모양처로 살아가고 있다. 남편 직장을 따라 객지생활도 10년 넘게 했단다. 부천에서 통학을 하던 그는 단골(?) 지각생이었다. 안양의 학교까지 일찍 오기 위해서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으리라. 요즘 우스개 말로 BMW(Bus, Metro, Walking)로 몇 번을 갈아타면서 통학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결석은 한 번도 없던 학생이었다. 반 아이들이 말썽을 부릴라 치면 당황해 하는 새내기 교사인 나를 꽤나 안쓰럽게 여겼단다.
중년의 엄마가 된 '아줌마 제자'가 아직도 내게 잊지 않고 꽃을 보내 주는 것을 보면 고마움에 앞서 미안한 생각이 든다. 별로 잘해 준 기억이 없기에 더욱 그렇다. 지금 투병 중인 당시 은사에게도 한 달에 한 번은 꼭 찾아뵙고 위로해 준다는 얘기도 들었다. 살림하는 주부로서 쉽지 않은 일이다. 나에게도 초등학교 시절부터 대학까지 수많은 스승이 계시다. 그런데 정작 나는 이 분들에게 꽃 한 송이 보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자주 만나는 은사들은 여러 분 계시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께는 전화 한 통 드리지 못하고 살아왔다. 이 '아줌마 제자'의 정성을 보면서 해마다 나름 반성도 해 본다. 나를 일깨워 주는 멘토의 역할 때문이랄까? 그러나 매년 받는 이 자그마한 꽃바구니와 안부전화는 교사시절의 추억을 되살리게 하는 일생의 큰 보람으로 자리잡고 있다.
모레가 스승의 날이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 하여 임금과 부모와 스승은 동격이라 했다. 그래서 미국이나 일본처럼 '교사의 날'이 아니고 '스승의 날'이다. 스승이야말로 정말 특별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아야 한다는 표현 또한 스승은 부모와 같이 늘 존경과 사랑으로 대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의 스승들은 많이 괴로운 것 같다. 학교를 찾아간 학부모가 선생님을 마구 때리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종례를 늦게 해 준다고 담임선생님을 밀치고 발로 때리고, 훈계하는 선생님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학생도 있다. 서글프기 짝이 없는 일이다. 정부의 교원 사기진작을 위한 대책이나 교원 예우에 관한 지침이 무색하다.
이제 제발 선생님들을 그만 괴롭혔으면 좋겠다. 스승에 대한 존경 풍토 없이는 공교육 살리기는 헛구호에 그치고 만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능가할 수 없듯이 교사를 존중해야 질과 자긍심도 당연히 높아지는 것이다. 교사도 이제 직업인으로서 예전처럼 신성시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교원들은 지금도 교직에 사명감을 갖고 아이들을 사랑으로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스승의 날 학교가 야단법석을 떨지 않았으면 하는 것도 교사들의 바람이다. 오로지 존경하는 마음에서 달아주는 카네이션 한 송이와 졸업생들의 안부전화 한 통이면 만족할 수 있다는 소박한 마음을 알았으면 좋겠다. 추억을 떠올리며 잊혀 가는 은사들을 찾아 안부전화라도 드리는 그런 스승의 날이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