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뿐이다. 찰나의 흥분은 여운도 없이 사라지고 또다시 서민들의 고단한 일상만 남은 탓이다. 재래상권 상인들에겐 그나마 그림의 떡이다. 썰렁한 가게를 지키느라 그 좋은 구경(?) 한번 못했으니 말이다. 인천지역 재래시장에서 장사하는 65세 이상 상인의 절반 이상이 한 달에 50만원도 못버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동네 슈퍼의 90% 이상은 매출이 형편없이 줄어드는 실정이다.
재래상권 붕괴의 직접적인 원인은 대형할인점 등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경쟁력에 기인하나 근본적인 이유는 대책없는 유통시장 개방이었다. 국내 유통시장이 외국계 자본에 점령당할 것을 우려한 정부는 1991년부터 유통업 현대화를 미끼로 대기업들의 유통업 진출을 독려했다. 비업무용 부동산규제 해제 및 특별여신공여 혜택도 제공했다. 전국 도심의 금싸라기 땅들이 재벌들 소유로 이전되면서 전국 도처에 수많은 백화점과 창고형 대형할인점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했다. 그 와중에 편의점, 카테고리 킬러 등은 동내 골목까지 진출했다. '위대한 국민' 운운하던 김영삼 정부는 한술 더 떠 1996년에 매장면적, 점포수 등 대형마트에 대한 최소한의 규제마저 완전히 철폐했다.
유통업 대형화의 논리는 간단했다. 즉 현대적 유통질서의 정착과 대형화를 통한 안정적 일자리의 대량 창출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비정규직 일자리만 양산했으며 대형마트가 1개 신설될 때마다 재래시장은 3.94개가 폐업하고 218명이 실직(失職)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동내 슈퍼들이 입는 타격까지 고려하면 피해규모는 훨씬 클 것으로 추정된다. 개방 파고에 대비한답시고 대형점 키우기에만 급급했을 뿐 정작 보호가 필요한 재래상권에 대한 대책은 애써(?) 외면한 탓이다.
재래상권이 빠르게 붕괴되면서 양극화문제가 첨예화되자 다급해진 정부는 2002년부터 재래상권을 살린다며 법석을 떨었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1조원이 넘는 세금을 풀어 전국 562개 재래시장을 현대화한 결과 매출증가는 고사하고 입점상인들의 임대료부담만 키웠다. 또한 현대적인 마케팅기법을 전수한다며 상인대학 운영 및 상품권 발행에다 인터넷쇼핑몰인 에브리마켓까지 구축해 주었으나 재래시장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림으로써 이래저래 사회적비용만 커지게 생겼다. 재래시장 활성화대책은 사후약방문이었던 것이다.
지방자치단체들의 이중플레이도 한몫 거들었다. 선거 때만 되면 선량들은 경쟁적으로 재래시장을 찾아 설익은 공약들을 남발해서 상인들을 설레게 하다가도 정작 당선만 되면 대형마트 유치에만 공을 들였으니 말이다. 2005년 10월 대형유통점과 중소물류센터 신축시 국·공유지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유통산업발전법의 제정은 지방재래시장에 결정타였다. 재래상권이 되살아나기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격이다.
유통시장의 세계적 개방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그럼에도 자본주의 종주국인 영국과 프랑스·독일의 경우 대형마트 허가제 및 휴일의무화, 영업시간 제한 등이 병행되면서 대형점과 재래시장이 공생중이다. 프랑스 파리는 재래시장 천국으로 정평이 나있다. 일본도 유통시장 개방파고로 재래시장들이 혼쭐났으나 우리처럼 심각하지는 않다. 목민관들의 혜안과 진지한 노력의 산물이었다.
조만간 선량 후보자들간의 물밑탐색전이 벌어질 예정이다. 이번에는 어떤 식으로 재래상권 상인들의 표심을 잡을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