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에서도 눈물이 뚝뚝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틀째인 24일 오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마련된 노 전 대통령의 분향소에서 조문객들이 폭우를 맞으며 분향소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일각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급작스런 서거를 놓고 검찰 책임론이나 '검찰수사가 동기'라는 말들이 나오는 상황이어서 검찰이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의 가족과 측근을 '먼지떨이식'으로 수사하고, 수사 내용을 흘리는가 하면 노 전 대통령을 소환조사한 뒤에도 20여 일간 신병처리를 미뤄 심적인 부담을 키움으로써 결과적으로 고인이 극단의 선택을 하도록 만든 게 아니냐는 것이다.

검찰은 국민적인 애도 분위기에 침묵을 지키고 있지만 노 전 대통령 소환조사 때 최대한 예우했고 사법처리를 미룰 수밖에 없는 합리적인 이유도 있었다면서도 책임론에는 '침묵모드'로 일관하고 있다.

■ '전직대통령에 망신만' vs '최대한 예우'='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유서에 담긴 짧은 문장에서 노 전 대통령이 최근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심적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한 달 넘게 진행된 수사 과정에서 수사 내용과 각종 의혹이 섞여 언론을 통해 끊임없이 공개되는가 하면 노 전 대통령이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거나 변호인을 통해 해명을 내놓고 다시 그 해명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는 일이 반복되면서 노 전 대통령은 자존심에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을 것이라는 게 심리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홈페이지에 "더이상 노무현은 여러분이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이 될 수가 없다.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한다"며 스스로 정치적 사망선고를 내렸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 노 전 대통령이 박 전 회장으로부터 회갑선물로 1억원짜리 명품시계 두 개를 선물 받았다는 언론보도가 나왔고, 노 전 대통령 측은 '검찰이 공개적인 망신을 주려고 언론에 흘렸다'고 반발한 바 있다. 딸 정연씨가 아파트 계약서를 찢어버린 점, 권양숙 여사가 명품시계를 버린 점 등이 잇따라 보도되면서 '금속탐지기를 갖고 봉하마을에 가자'는 말도 나왔다.

■ '사법처리 늦춘 것도 잘못' vs '상황변화 때문'=대검 중수부는 작년 9월부터 노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와 후원자인 박연차·강금원·정화삼씨, 측근인 정상문·이광재·이강철씨 등을 잇따라 구속했다. 이런 상태에서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을 정조준해 권양숙 여사를 한차례 소환하고 아들 건호씨와 딸 정연씨까지 수차례 불러 조사했다. 노 전 대통령도 지난달 30일 국민에게 "면목없다"며 고개를 숙인 뒤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소환조사 직후인 이달 4~6일께 구속영장 청구나 불구속 기소 여부 등이 결정될 것으로 보였던 사법처리는 그러나 20일 넘게 미뤄졌다. 그 사이 권 여사 재소환 계획 등이 나오면서 노 전 대통령의 심적 부담은 극에 달했을 것이라는 게 검찰의 책임론을 거론하는 쪽의 논리다.

이에 대해 검찰은 상황 변화를 내세우고 있다. 권 여사가 박 전 회장한테 받아 썼다고 주장한 3억원이 정상문 전 대통령 총무비서관의 차명계좌에서 발견되는 등 애초 해명과 다른 정황이 나와 권 여사를 재소환할 필요성이 대두했다는 것이다.

■ 檢 책임론엔 '일단 수사 매듭부터'=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은 "검찰이 의혹을 사실인 양 언론에 흘리고 무책임한 수사를 벌여 전직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하고 시정잡배로 만들었다"며 검찰을 거칠게 몰아붙였다. 네티즌들은 대검 홈페이지에 '표적수사가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검찰이 원한 결과가 결국 이것이냐', '국민이 입은 충격과 상실감을 보상하라'는 등의 글들이 수백 건 올랐다. 검찰 안팎에서는 임채진 총장의 사퇴설도 나오는 상황이다.

그러나 검찰은 일단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고 침묵을 지키고 있다. 수사팀은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해 휴일에도 언론을 상대로 브리핑을 해왔으나 서거 이후 이를 중단했다. 그러면서도 임 총장을 비롯한 대검 간부들이 23~24일 전원 출근해 긴급회의를 열며 향후 수사 방향과 여론 추이를 살피는 등 정중동(靜中動)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법무부와 서울중앙지검 등 일선 검찰청 지휘부도 대부분 자리를 지키며 검찰에 돌아올 책임론이나 역풍 등을 차단하고 '박연차 게이트' 등 부패 수사가 차질없이 진행되도록 하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