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은 넓었다. 서우광까지 가는 내내 차창 좌우로는 반듯하게 정리된 너른 밭이 끝도 없이 펼쳐졌다.
3시간 정도 지나 도착한 서우광 시내는 개막을 하루 앞둔 '제10회 중국 서우광 국제채소과학기술박람회' 준비가 한창이었다.
서우광에서는 광활한 땅덩어리와 무한한 노동력에 최고의 재배기술을 접목시켜 세계 시장을 호령하려는 중국의 야심이 구체화되고 있었다.
#'채소지향(蔬菜之鄕)' 서우광
서우광은 행정구역상 산둥성 웨이팡시에 속하는 인구 100만명이 조금 넘는 소도시다. 중국 상형문자의 발상지답게 고대문화유적으로 유명하고, 중국 최대의 채소생산기지로도 알려졌다. 토질이 좋고 물이 풍족한 서우광에서는 연중 싱싱한 채소들이 재배돼 중국 각지로 공급된다. 개방 이후에는 농산물을 취급하는 많은 외국계 기업들도 서우광에 둥지를 틀었다. 이런 서우광에서 10회째를 맞은 채소박람회는 중국 농업부와 상무부, 환경보호부, 농업과학원, 산둥성인민정부가 주최하는 중국 최대의 채소 관련 박람회이자 채소재배기술 전시회다. 중국 경상부(經商部)가 인가한 국제 행사로 중국의 성·시·자치구들이 총출동하고, 세계 50여개 국에서도 매년 참가하고 있다.
박람회 장소인 채소고과기시범원(蔬菜高科技示範園)은 순수 전시면적이 12만여㎡(3만6천여평)에 이르는 매머드급 규모다. 건축 연면적이 35만㎡나 되는 주 전시관을 비롯해 야외전시장, 공연장, 식당 등 최신 부대시설을 갖췄다.
올해 박람회는 4월 20일부터 이달 20일까지 한 달간 계속됐다. 경인일보와 (사)한중경제인협회는 한국측 주관사로 참가했고, 경기도는 참관단 자격으로 방문했다.
#채소도 어엿한 문화관광상품
거의 매일 식탁에서 마주하는 채소들. 일상에서는 눈길 한 번 주는 게 어려울지 몰라도 서우광에서는 예외였다. 서우광 채소박람회에서는 사람들의 시선을 매혹시키는 관광상품으로서 채소가 가진 가능성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박람회 전면에는 세계 각국 기업들이 800여개의 부스를 세워 마케팅 경쟁을 벌이는 주 전시장이 자리했다. 주 전시장은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여느 박람회장과 흡사했다. 각 부스에서 다양한 채소와 종자, 농약, 농기계, 포장재, 비료 등이 전시·판매되는 흔하디 흔한 박람회장의 모습이었다. 서우광 박람회의 진가는 주 전시장 옆쪽으로 쭉 늘어선 대형 유리온실에 숨겨져 있었다. 개당 면적이 1만㎡가 넘는 거대한 유리온실들은 중국의 농업 기술을 뽐내듯 다양한 채소와 곡물, 과일 등으로 만든 독특한 전시물들이 꽉꽉 채워져 있었다.
소의 해인 '기축년(己丑年)'을 맞아 세워진 황소상의 주 재료는 콩과 옥수수 알갱이 등 곡물. 화려한 작품들의 정체는 눈을 가까이 들이대야 비로소 파악됐다.
대형 꽃은 고추와 피망, 참외와 귤, 사과, 수박 등 형형색색의 채소와 과일들로 만들어졌고, 역시 비슷한 재료들로 전체 길이가 80m나 되는 용도 형상화됐다.
꽃으로 만든 조형물은 국내 꽃박람회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극히 일부를 제외한 꽃은 태생이 관상용이다. 서우광 박람회는 본래 목적이 식용인 채소도 얼마든지 시각적인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었다.
올해 처음 박람회장을 찾은 경기도 참관단의 입에서도 "채소로 만든 작품들이 놀랍다"는 경탄이 터져나왔다. 여기에 천장에서 열리는 수박 덩굴, 반경이 5~6m나 되는 거대한 토마토 나무, 고목에 접붙여 재배한 영지버섯 등 희귀한 전시물들은 관람객들의 발길을 완벽하게 붙잡았다. aT(농수산물유통공사) 중국지사 관계자는 "서우광이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채소박람회가 된 것은 바로 이 온실들 때문"이라며 "온실 하나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한나절 이상 걸리는데 이런 온실이 무려 10여 개나 된다"며 혀를 내둘렀다.
#규모에 질까지 더해지나
서우광 채소박람회는 중국 농업기술의 현주소를 짚어보고, 향후 발전방향을 예측할 수 있는 방향타로 통하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서우광에 주목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올해 공식집계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지난해에는 업계 종사자와 관람객 등 150만명 이상이 몰렸고, 우리돈으로 3조5천억원을 상회하는 교역실적을 올렸다.
조직위는 지난해 9월부터 올 박람회를 준비하며 세계시장에 선보일 재배기술과 각종 작품 준비에 매달렸다고 한다. "독일과 네덜란드 등에서 큰 채소박람회가 열려 단정할 수는 없어도 중국 최대인 것은 확실하다"는 조직위 관계자의 말에서는 자신감이 넘쳤다. 서우광 채소박람회의 수많은 부스와 전시물 중 유독 경기도 참관단의 눈길을 잡아끈 곳은 바로 '신젠타(Syngenta)'의 부스였다. 세계 최대의 다국적 종자기업인 신젠타는 주 전시장 중앙에 가장 큰 부스를 마련해 놓고 관람객을 맞고 있었다.
경기도 관계자는 "신젠타의 우수한 종자들이 중국에서 재배된다면 중국 농산물의 수준이 그만큼 올라가고 우리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며 "신젠타가 중국 시장을 어느 정도 장악했는지 파악할 필요가 생겼다"고 밝혔다.
※ 박람회 공식식당 '온실 레스토랑'
내부 작물·중국풍 인테리어 독특… 중앙홀·수십여개 방 관람객 발길
서우광 국제채소과학기술박람회 조직위원회의 '싱싱한 아이디어'는 식당 하나에서도 번뜩였다.
내빈과 관람객 등이 이용하는 채소고과기시범원 안의 박람회 공식식당은 거대한 온실 전체.
과거 재배용으로 사용된 듯한 온실 내부는 각종 작물과 중국풍 인테리어가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중앙홀을 비롯해 수십개의 방으로 이뤄진 이 색다른 온실식당에 관람객들의 눈은 다시 한번 휘둥그래졌다.
온실식당에서는 점심의 경우 중국 위안화로 60원(우리돈 약 1만1천원), 80원(약 1만4천500원)짜리 세트메뉴 식사가 제공됐다.
※ 인터뷰 / 첫 박람회 도전장 박순오 디 와이팩 사장
발전한 중국시장·기술수준 실감
중국 서우광 국제채소과학기술박람회는 벌써 10회째를 맞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에는 낯설다.
우리 정부나 지자체 차원에서 참가한 것은 고사하고, 개별 기업들조차 아직까지 서우광의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사)한중경제인협회는 교류의 물꼬를 트기 위해 회원인 디 와이팩 박순오 사장을 필두로 올해 서우광 박람회에 첫번째 도전장을 내밀었다.
박 사장은 "한국업체 중에서는 유일하게 서우광 채소박람회에 참가한 것 같다"며 "상당히 발전한 중국의 채소시장 규모와 재배 기술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디 와이팩은 박람회에서 연천군 농업기술센터와 공동개발한 비닐호박을 선보였다.
비닐을 씌워 재배하는 비닐호박은 보관기간을 연장시킬 뿐 아니라 정형화된 크기의 단단한 육질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다. 박 사장은 "박람회에서 선보인 뒤 중국 바이어와 농장, 대형마트들의 문의가 계속되고 있어 비닐호박이 중국 시장에서도 통할 것으로 확신한다"며 "내년 박람회에는 보다 조직적으로 규모를 갖춰서 승부수를 띄우겠다"고 계획을 밝혔다.
중국 서우광/김창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