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 패륜이 넘쳐나던 안방극장에 지각 변동이 일었다. 캔디형 주인공이 고난을 극복하고 성공하는 이야기를 그린 SBS TV '찬란한 유산'이 지난달 31일 시청률 30%를 돌파하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올들어 '꽃보다 남자', '내조의 여왕'에 이어 세 번째로 시청률 30%를 돌파한 드라마인 '찬란한 유산'은 착하고 억척스러운 여주인공의 성공기를 중심으로 극적 긴장감을 높이는 미스터리 라인, 배우들의 팽팽한 연기 대결이 어우러져 사랑받고 있다.

   ◇권선징악의 찬란한 판타지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는다. 전래동화에서는 그랬다. 하지만 첨단을 달리는 21세기에서는 능력 있는 사람이 복을 받을 뿐이다. 그리고 그 '능력'을 둘러싼 해석은 선악의 기준을 뛰어넘는다.

   하지만 권선징악(勸善懲惡)은 영원한 노스탤지어처럼 언제 어디서든 사람들의 마음을 자극하고 감동을 준다. 사실 새로울 것이 없는 '찬란한 유산'이 시청자들을 흡입하는 가장 강력한 요소도 바로 이러한 권선징악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이것은 한동안 안방을 휩쓸었던 복수라는 이름의 광풍과는 또 다르며, 한편으로는 판타지로 다가온다.

   '찬란한 유산'의 고은성(한효주 분)은 복수를 위해 뛰지 않는다. 번듯한 집안의 뒷바라지를 받는 미국 유학생에서 하루아침에 고아에 알거지가 되고, 하나뿐인 동생마저 잃어버리는 고통의 쓰나미를 온몸으로 만나지만 그는 복수의 칼을 갈지 않는다. 그럴 시간에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길을 모색하기 위해 밤낮으로 노력한다.

   또 지금까지는 그 고통이 누구의 탓이라는 것을 모르기도 했지만 그는 천성적으로 누구를 탓하는 성격이 아니다. 그의 착하고 이타적인 성품은 분명한 복수의 대상을 발견해도 폭발하지 못한다.

   은성을 지금의 처지로 만든 장본인인 은성의 계모 성희(김미숙)는 "은성이처럼 고생해보지 않고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남을 의심할 줄 몰라"라며 계속해서 은성을 속이고 또 속인다.

   하지만 은성이 파헤치려 하지 않더라도 성희의 악행은 얼음 아래 강물처럼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물론 얼음을 녹이는 것은 복수가 아니라 은성의 따뜻한 품성이다.

   '찬란한 유산'의 SBS 허웅 CP(책임프로듀서)는 "한동안 각광받던 억지설정, 극단적인 스토리에 시청자들이 피로감을 느끼는 것 같다"며 "'찬란한 유산'은 따뜻하고 긍정적인 드라마라는 점에서 남녀노소가 적극적으로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손에 땀을 쥐게하는 미스터리
은성의 건강함과 선함이 한 축이라면 드라마의 또다른 축에서는 미스터리의 바퀴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지난달 31일 방송에서 은성은 마침내 자폐증에 걸린 자신의 동생을 버린 사람이 성희라는 사실을 알게됐다. 그러나 은성이 알아야할 것은 여전히 많다. 아버지가 죽지 않고 살아있으며, 아버지의 생명보험금을 성희가 빼돌렸고, 돌아온 아버지를 성희가 거짓말을 하며 내친 사실 등이 밝혀져야한다.

   미스터리의 실타래가 서서히 풀려가는 것은 은성이 굳이 나서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손'이 악한 사람에게 벌을 주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짜릿한 쾌감을 전해준다. 시청자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은성의 입장이 돼 하나둘씩 진실을 마주하는 과정에서 은성을 응원하며 함께 기뻐하고 있다.

   이러한 미스터리가 빛을 발하는 데는 악역을 맡은 김미숙의 호연이 결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기존의 이미지를 배반하고 악인으로 변신한 그의 연기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고요해 더 무섭다.

   허웅 CP는 "김미숙 씨의 연기는 소름끼칠 정도"라며 "악역의 연기가 빛나 드라마의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찬란한 유산을 둘러싼 선의의 경쟁
28회로 예정된 '찬란한 유산'은 중부능선을 넘어섰다. 이제부터 드라마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은성과 환(이승기)이 진성식품 경영권을 둘러싸고 선의의 경쟁을 펼치게 되는 것.

   진성식품 장사장(반효정)이 핏줄을 다 물리치고 생판 남인 은성에게 모든 유산을 상속하겠다고 선언하자, 이에 자극받은 장사장의 손자 환이 은성과 경쟁을 펼치겠다고 선언하면서 드라마는 두 젊은이의 건강한 대결과 성장을 그리게 된다.

   제작진은 애초 한효주와 이승기를 남녀 주인공으로 캐스팅하면서 다소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 과연 이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잘 끌어갈 수 있을까 염려했던 것. 그러나 우려는 금세 기우로 바뀌었다.

   허웅 CP는 "연출자와 연기자들의 호흡이 처음부터 아주 잘 맞았다. 덕분에 별로 기대하지 않은 부분까지 연기자들이 표현해내고 모두가 자기 몫의 120%를 해내고 있다"며 "중년층의 연기야 말할 것도 없고, 젊은 연기자들이 기대 이상으로 잘해주고 있어 드라마가 살아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