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시가 뒤늦게나마 강빈의 역사적 삶에 대한 조명과 함께 묘소인 '영회원(永懷園)'의 종합정비계획을 마련해 추진, 귀중한 향토사적으로 평가될 것으로 보인다.
1611년(광해3)에 태어난 강빈은 인조의 맏아들인 소현세자와 1627년(인조5) 가례를 올린다. 그리고 소현세자 부부의 비운은 인조가 1637년에 삼전도에서 청나라 황제에게 굴욕적인 항복을 한 후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가 무려 8년간 생활을 하면서부터 시작된다.
귀국 후에도 인조는 소현세자 부부를 가상히 여기기는 커녕 왕좌를 노리는 정적으로 생각했고, 결국 소현세자는 귀국 2개월만에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강빈 역시 왕실과 권력에 눈이 먼 사대부들의 끊임없는 모략속에 결국 1646년 1월에 인조 수라에 독을 넣었다는 무고로 후원 별당에 연금됐다가 폐사자빈의 몸으로 친정인 지금의 능촌마을로 돌아와 같은 해 3월 사약을 받고, 파란만장했던 삶을 마감하고 영회원에 묻혔다.
강빈은 1718년(숙종 44)에야 혐의를 벗으면서 민회(愍懷)라는 시호가 내려져 세자빈(민회빈)에 복위했다. 이 묘소는 1903년(고종7)에 영회원으로 개칭됐고, 1991년 사적 제357호로 지정돼 관리돼 오고 있다.
이효선 시장은 "영회원에 대한 종합정비계획을 마련키 위해 이미 용역이 발주돼 오는 8월초면 최종 보고회가 이뤄질 것으로 본다"며 "용역결과를 토대로 정비사업을 벌여 지역내 명소로 자리잡도록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