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준구 (논설위원)
"신문에 나타난 것은 이제 아무 것도 믿을 수가 없다. 그 오염된 매체에 실리게 되면 진실조차도 의심받게 된다."

'신문없는 정부보다 정부없는 신문을 택하겠다'며 언론의 중요성을 강조한 토머스 제퍼슨이 미국의 제3대 대통령에 당선된 후 한 말이다. 대통령에 당선후 신문에 대해 180도 시각을 바꾼 이유는 뭘까? 연일 계속되는 언론의 공세에 지친 탓이 컸다. 노무현 전 대통령 만큼 언론과의 관계가 불편했던 대통령도 없다. 임기 내내 언론의 의제는 '대통령 때리기'의 연속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특히 보수 메이저 신문과의 관계는 더욱 불편했다. "행정수도 이전을 반대하는 언론이 누굽니까? 서울 한복판에 커다란 빌딩 갖고 있는 신문사들 아닙니까?" 특유의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하던 노 전 대통령을 이들은 미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무명 정치인이던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기까지에는 이들 언론의 기여가 컸던 게 사실이다. 지난 1988년 국회 5공비리 청문회에서 공격적인 어투로 급소를 파헤치던 노무현은 청문회 스타로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결국 민주당의 대통령후보까지 올라 청와대에 입성했다. 미디어 정치의 큰 혜택을 입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노무현이 대통령이 된 이후 제퍼슨처럼 언론과의 적대적 관계로 돌아선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있어서도 언론과 인터넷의 영향력은 컸다. 대통령 선거에서 보수언론들의 적극적 보호가 큰 역할을 했다. 게다가 여론을 실시간으로 주도한 우파 인터넷의 묻지마식 기대감과 지원이 이명박 정권을 탄생시키는 데 기여했다. 보수언론 출신들은 당연히 MB정권 속에 파고들었고, 언론정책을 펼치는 데 주요 포스트에 자리하고 있다. 청와대대변인, 방송통신위원장,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을 비롯한 많은 인사들이 그들이다.

신문법 개정안을 비롯한 언론 관련 7대 법 개정에 국민들의 관심이 쏠려있다. 우선 신문법 개정안의 핵심을 들여다 보면 거대 신문의 방송진출 허용과 중소 신문에 대한 통제다. 기존법의 일간신문·통신이 방송을 겸영할 수 없도록 한 조항을 삭제해버린 것이다. 신문사간 인수·합병도 무제한 가능토록 했다. 신문시장의 80%를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 거대신문들이 재벌과 손잡고 방송까지 설립해 자본이 취약한 중소 신문사들을 삼켜버리는 길을 열어주는 셈이다. 신문부수 검증도 50%만 수금하면 유가부수로 인정한단다. 거대 신문사들이 50만부만 수금해도 유가부수 100만부가 인정되는 것이다. 또 현재 자행되고 있는 5만~10만원짜리 상품권에 경품·현금까지 살포하는 불공정 행위를 마음대로 행할 수 있도록 사실상 허용한다. 현재의 신문시장여건을 볼 때 중소신문이나 지역신문은 자살하라는 법이나 다름없다.

청와대가 낮의 권력이라면 밤의 권력이라 불리는 재벌언론이 방송까지 장악하게 된다면, 그렇지 않아도 공룡화된 언론권력은 그야말로 절대권력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다. 국가적으로도 매우 위험한 일이다. 국가 권력이야 고작 5년이지만, 언론권력은 경영의 세습제 현실에서 영원(?)할 수 있다. 정권에 빌붙어 온갖 영화를 누릴 수도 있다. 미디어 왕국을 세워 블루오션 정도가 아니라 황금바다에도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국민들로부터 여론의 독점에 대해 질타를 받고 있는 마당에 언론인들의 대다수가 반대하고 있는 법을 '죽기 살기'로 통과시키려는 속셈을 모르겠다.

나라가 멸망한 비극적 식민통치시대에 천황폐하 만만세를 불렀고,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와 전두환에게 '구국의 결단'을 내린 통치자라 찬양했으며, 광주시민을 학살한 신군부에게 '군의 노고를 치하'한 언론들이다. 이제 방송에까지 진출하게 된다면 이 나라 여론이 어찌 될 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명박 대통령의 뜻인지, 한나라당의 뜻인지는 모르겠으나 언론을 언론답게, 언론 본연의 자리로 세워 줄 것을 당부한다. 그 것이 국민 대다수의 여론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