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들의 애용품인 담배소비량과 경기간에는 역의 상관관계에 있다는 것이 속설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지속된 글로벌금융위기 여파로 담배소비량은 증가했을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지난 1분기 국민들의 담뱃값 지출은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확인되었다. 술값지출도 동반하락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처음이란다. 극심한 불경기로 인해 실질소득이 감소한 탓으로 추정하고 있다. 1분기 가구당 실질소득이 전년 동기대비 3% 감소하고 소비지출 감소는 이보다 두배나 높은 6.8%를 기록했으니 말이다. 적자가계도 3가구 중 1가구 꼴인데 하위 30%계층의 적자가구는 절반이 넘는다. 글로벌경제위기의 최대 피해자는 서민층이었던 것이다.
통화유통속도도 사상최저치로 추락했다. 실물부문에 돈이 제대로 돌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정부와 국책금융기관, 한국은행 등이 경제위기극복을 위해 총 390조원을 조성했다. 올해 정부예산 284조원보다 무려 1.4배나 큰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중소기업들의 자금난을 고려,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의 보증규모를 5조6천억원으로 늘렸으며 유류세환급금 3조5천억원을 포함 총 6조6천억원의 세금을 돌려주는 등 지금까지 집행된 자금만 132조2천억원이다. 덕분에 나라빚만 1년 사이에 추가로 60조원이 불어나는 등 지난 1분기 통합재정수지는 12조4천억원의 적자로 사상최악을 기록, 재정건전성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그런데도 서민경제는 전황(錢荒)으로 돈 구경하기가 어렵다. 그 많던 돈이 다 어디로 갔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은행권의 기업대출 증가율은 지난 4월 3조2천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 10조9천억원의 3분의1 수준에 머물렀다. 은행들이 대출을 꺼린 나머지 엄청난 돈이 은행금고에 방치되어 있는 것이다. 기업들도 한몫 거들었다. 자산총액 10대 그룹 상장 계열사들의 올 3월말 기준 유보율은 945.54%로 1년전보다 60.8%포인트 상승했다. 잉여금을 자본금으로 나눈 비율로 영업활동 또는 자본거래를 통해 벌어들인 현금이 얼마나 기업내부에 유보되어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투자는 뒷전이고 은행대출이든 매출이든 무조건 현금부터 확보해 놓자는 식이다. 경기전망이 지극히 불투명한데다 조만간 큰 장이 설 M&A에 대비, 사전에 실탄을 충분히 비축하기 위해서다. 중견기업들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대금지불을 최대한 억제하는 한편 은행대출을 늘리고 그것도 모자라 돈이 될 만한 물건들을 팔아 현금을 확보했다. 정부가 풀었던 막대한 자금들이 은행을 경유해서 극소수의 우량기업들에 흘러들어 갔던 것이다.
그러나 이 돈이 화근이었다. 기업들은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서 확보한 자금의 대부분을 즉시 현금화가 가능한 계좌에 묶어둠으로써 대기성자금인 핫머니(부동자금)로 둔갑했던 것이다. 시중에는 무려 800조원이 넘는 부동자금이 스텐바이 중인데 금년에만 60조원이 추가되었으며 1년전에 비해서는 92조원이 순증했다. 그동안 정부가 풀은 자금의 70%에 해당한다. 물론 이 돈이 전부 정부계좌로부터 흘러나왔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으나 정부지출이 부동자금 급증에 상당부분 기여한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정부에 비상이 걸렸다. 핫머니들이 각종 청약시장과 부동산시장에 떼로 몰려다니며 판을 키우는 등 과잉논란을 부채질하는 탓이다. 급기야 정부는 서민경제 활성화를 위해 28조원의 추경예산을 새로 편성하고 은행들의 BIS(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 기준치를 10%로 끌어내리며 기업들에 투자확대를 종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부동자금규모는 줄기는 커녕 더 확대될 개연성이 높은데다 민생은 더욱 얼어붙는 형국이다. 재정건전성을 크게 훼손하면서까지 경제회생에 올인 했으나 경제불안만 증폭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던 것이다.
이제는 정부당국자들이 "담배 있나?"며 되물어야 할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