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는 분배보다는 성장을 우선하는 MB노믹스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경제활동에 걸림돌이 되는 전봇대를 모두 뽑아낼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감세를 추진해서 파이를 최대한 키우겠다는 것이었다. '물이 넘쳐흐르면 바닥을 적신다'는 트리클다운 이론에 근거한 것이다. 공약 실천차원에서 정부는 지난해에 종합부동산세 과세표준을 6억원에서 9억원으로 올리고 세율도 낮췄으며 다주택 소유자들에 대한 세금 중과도 대폭 완화하는 등 노무현 정부의 세금대못을 몽땅 제거했다. 올해들어서도 소득세와 법인세를 각각 인하한 터에 법인세율도 현행 25%에서 20%까지 낮출 뿐만 아니라 증여·상속세도 단계적으로 끌어내리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가진 자 위주의 감세청사진까지 이미 확정했다.
당장 문제가 불거졌다. 이 정부 집권이래 단행한 대규모 감세 조치로 세수감소분이 2012년까지 무려 90조원에 이를 예정인데다 유류세 환급이란 명목으로 서민들 푼돈으로 4조원을 낭비했다. 또한 지난해 하반기 이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투입한 공적자금 지급보증액이 215조원에 이르고 금년 상반기에는 사상 최대 규모인 28조원의 추경예산을 편성했으나 서민경제는 여전히 한겨울이다. 덕분에 국가 채무가 눈덩이처럼 불어났으며 금년 1분기에만 경기부진으로 세금이 8조원이나 덜 걷히는 등 올해 재정적자가 51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 예산편성에도 차질을 빚을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정부가 공언했던 2012년 균형재정 달성 목표는 헛구호였던 것이다.
다급해진 정부는 "기업회생을 위해 실탄을 다 써버린 만큼 이젠 기업들이 나설 차례"라며 대기업들을 윽박지르는 한편 '중도강화론'을 표방하며 서민층 끌어안기에 나섰다. 지난해 국회에서 통과된 법인세 인하건만 예정대로 추진하고 MB노믹스의 중핵인 증여·상속세 인하를 유보하며 고소득층에 유리한 신용카드 소득 공제도 축소하기로 했다. 연소득 8천800만원 이상의 고소득자에 대한 소득세 추가 인하는 물 건너 갈 공산이 크다. 부자 정권의 이미지 탈색작업에 나선 인상이다. 오죽했으면 모 보수논객이 MB정부가 노무현 정부를 닮아가고 있다며 일침을 가했을까.
곳간이 비었으니 새로 채워야하는 것은 당연하다. 국가신용등급 하락 등을 고려하면 증세의 당위성이 훨씬 더 커보이는 까닭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한국을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재정위기 가능성이 높은 국가로 지목한 바 있다. 야당인 민주당은 물론 심지어 한나라당까지 감세정책 유보론을 제기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경기위축 내지는 물가 불안이 우려돼 무턱대고 증세할 수도 없다. 800조원이 넘는 부동자금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 부자 감세로 인한 세수부족분을 서민들로부터 충당하려 한다는 비난도 두렵고 최근 잇따른 부자 감세정책의 철회에 대해 보수언론들이 날을 세우고 있는 점도 걸림돌이다.
터미네이터 주지사 사례에서 보듯이 감세와 규제 완화에 기초한 공급측 경제학은 페이드아웃되는 중이다. 증세는 선택이 아닌 의무사항이다. 세수보전을 위해 2002년에 폐지됐던 전세보증금에 대한 소득세를 다시 부활할 예정이나 어느 정도 국가재정에 보탬이 될지 의문이다. 규제완화도 공염불로 끝날 개연성이 높다. 시간도 정부편이 아니다. MB노믹스가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정부 스스로 만든 굴레를 어찌 벗을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