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완 (논설위원)
학교급식이 경기도 정치권내 큰 싸움거리가 됐다. 학생 먹거리 마저 정쟁의 도구가 돼버린 슬픈 현실이다. 당과 정책이 다르다고 급식에 대한 접근법 조차 큰 차이가 나 극과 극을 달리는 정치권을 보고 있는 시민들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문제의 발단은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의 핵심 공약사업인 경기지역 소규모 학교와 농산어촌지역 학교의 무상급식 확대 예산을 도교육위원회가 삭감키로 하면서 불거졌다. 삭감 이유로 이들 지역 학생들의 가정이 다 어려운 것도 아니고, 차상위계층을 포함해 어려운 학생에게 골고루 지원돼야 한다는 것이 요지다.

저소득층 가정 학생도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잘사는 가정의 학생에게까지 혜택을 주는 무상급식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는 논리다. 무상급식 찬성측은 의무교육차원에서 무상급식은 반드시 이뤄져야 하며, 농어촌지역 학생 300명 이하 학교지원은 시작의 의미가 있다고 맞선다. 이후 "진보니 보수니, 1년2개월짜리 교육감이니 따지면서 정치적 의도를 갖고 대안도 없이 발목이나 잡는 부끄러운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도민들의 환심을 사서 선거에서 표나 많이 얻으려는 어설픈 포퓰리즘이다" 등등 여·야 공히 정치적인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국회의원도 가세, 이견을 좁히는 등 해결하려는 의지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자당과 같은 무늬의 아군 응원에만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이래서는 어느 쪽으로 결정나더라도 두고두고 정쟁거리로 골만 깊게 하는 화근으로 남게 될 것이 뻔하다.

학교급식의 역사는 17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의 뮌헨에서 어려운 가정의 아동을 구호할 목적으로 '수프식당'을 개설한 것이 계기가 돼 유럽 전역과 세계로 파급됐다. 우리나라에서 학교급식이 시작된 지는 유럽처럼 긴 역사를 갖고 있지 않지만, 그래도 50년을 훌쩍 넘겼다. 1953년 6·25전쟁 이후 국가와 국민 경제가 몹시 빈곤했던 시기로 한끼 조차 때우기 힘든 빈곤층 아동이 대상이었다. 이 때 학교급식은 구호급식을 의미한다.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아 폐허가 되다시피한 국토를 재건하던 정부가 자체 재정으로 구호급식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때문에 세계자선기구인 국제아동기금(UNICEF), 세계민간구호협회(CARE), 미국국제개발처(US-AID) 등이 지원하는 옥수수가루·식용유·탈지분유·소맥분 등으로 당시 국민학교 아동에게 무상급식을 실시하게 된다. 외국원조에 의한 구호급식은 이후 20년간 지속되다 1973년 종료됐고, 그 자리를 정부지원과 학교별 채소 가꾸기 및 양계 등 자립형태의 급식이 대신하게 된다.

학교 급식의 시작은 세계 어느 나라든 구호급식으로 질보다는 양적 경향이 컸다. 그러나 오늘날은 양과 병행해 균형잡힌 양질의 식단이어야 한다. 건강과 학습효과 등 성장기 관리의 중요한 분야며 그래서 정부가 학교급식에 있어 영양은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항목이다. 하지만 현실은 모든 학생에게 학교급식을 적용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것 또한 사실로 보다 나은 급식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단계별 계획과 정확한 데이터가 필요하다. 무상급식 대상 학생을 어느 계층까지 확대해야 하는 지, 양질의 식단을 짜기 위해서는 확보해야 하는, 확보할 수 있는 예산은 어느 정도인지 등등 따져 봐야 한다. 또한 간과해서는 안될 것은 무상급식을 받는 저소득 가정의 학생이 마음의 상처를 받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시작은 광대하나 결과가 없거나, 도중 하차로 사업을 포기할 경우 그 또한 부작용이 클 수밖에 없다. 농·어촌 학교 무상지원 확대, 차상위계층 등 지원계층 확대 등 급식관련 경기도 정치권에서 주장하는 내용이 모두 맞지만, 시행하는데 필요한 조건들이 충분히 갖춰졌는 지를 따지는 것도 게을리해서는 안될 사안이다. 내 주장만이 옳다 하며 사생결단식 정쟁은 수혜자인 학생을 비롯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도민들은 학생급식에 관한한 모든 여건을 감안해 최선의 방안을 찾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며, 거기에서 정답이 나올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