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준구 (논설위원)
[경인일보=]시군 통합에 관한 얘기가 또다시 불거지고 있다. 2001년 행정구역 개편과 시군통합논의가 이뤄지다가 공무원들의 반발에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이라는 이유로 슬그머니 사라진 지 8년만의 일이다. 행정안전부의 지방행정체계 개편에 대한 생각은 올해 안에 시군 통합을 마무리 짓고 내년 지방선거에 적용한다는 얘기다. 물론 자율적 통합이 전제란다. 하지만 내년 6월 동시 지방선거가 9개월 남짓해 물리적으로 계산한다 해도 실현가능성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시군통합은 경기도가 또 타깃이다. 31개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27개가 시지역이다. 여주 양평 가평 연천만 군으로 남아있다. 전국 70여개 시 가운데 37% 정도가 경기도에 몰려있으니 시군통합 논의가 불거지면 항상 도마에 오른다. 대상지역은 남양주·구리, 의정부·양주·동두천, 안양·군포·의왕 등 3군데다. 시내버스와 택시 등 대중교통 노선이 통합되어 있고 시민들의 생활권역도 거의 동일해 통합에 대한 당위성이 표방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통합을 너무 서두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겉으로는 자율적인 통합을 내세우고 있지만 정치권과 행정부가 개편안을 이미 만들어놓고 오히려 하향식으로 밀어붙이고 있지는 않은지 염려스런 점도 있다. 벌써 통합이 거론되고 있는 구리시 주민의 반발이 나타나고 있다.

자치단체장들끼리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석우 남양주시장이 구리시와의 통합논의에 불을 지펴 촉발됐지만 다른 지역의 경우를 보면 시장들의 간단한 입장표명 이외에는 주민들의 관심조차 없어 아직 통합논의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서서히 논의가 시작된다면 이 문제가 지역간, 주민간의 또다른 사회적 갈등을 유발시키고 국론이 분열될 우려가 상존하고 있다.

주민들의 요구와 정치적인 논리에 의해 우후죽순처럼 시로 승격시켜놓고 20년이 지난 이제 와서 통합이냐는 여론도 들리고 있다. 시군통합은 행정의 효율적인 측면과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이점에도 불구하고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다. 시청사의 위치를 어디에 둘 것인가에 대한 문제라든지, 교육청 경찰서 소방서와 각급 행정기관의 재편과 각종 사회단체들의 통합에도 또다른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 안된다. 자칫하면 이같은 간접통합비용이 막대하게 지불될 수도 있다.

시군통합이나 지방행정체제 개편은 지역의 지도와 대한민국의 지도를 다시 그리는 중차대한 일이다. 대한민국의 지방행정체제를 개편하는 일을 몇 군데 샘플을 통해 수개월내에 처리한다는 것은 자칫 누더기에 그칠 뿐이고 차라리 아니 함만 못할 수도 있다. 임태희 전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이 한 말이 생각난다. 지방행정체제 개편과 시군통합은 개헌보다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다. 그만큼 사회적 합의와 주민들의 동의를 전제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행정체제 개편이나 통합에 반대하는 부류도 이에 대한 필요성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국가 경쟁력이라는 큰 틀과 효율적인 지방자치의 구현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고 있기는 하다. 다만 너무 급하게 지방행정개편을 이뤄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전 정지작업과 여론조성을 통해 철저한 준비와 순차적인 절차에 의해 여건조성을 한 뒤에 시작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따라서 현 단계에서는 특정 대안을 선택하는 문제보다는 현재의 지방행정 체제가 지닌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시급한 과제다. 행정체제 개편은 자칫 심각한 사회적 갈등으로 비화될 수 있는 만큼 사회적 공론과 합의의 과정이 중요하며 논의의 시한을 정하고 밀어붙이기보다는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밟아가야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학자와 전문가 그리고 주민대표들로 구성된 비정치적 중립기구를 만들어 신중한 논의를 해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법이 통과된 뒤에 해도 절대 늦지 않는게 행정구역개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