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게 사람들을 맞는다. 밤새 기다려온 것처럼, 그러나 꼬리를 흔들지는 않는다. 맞이하는 그의 인사에 반가워하는 사람들이 한발이라도 다가가면 어느새 몇 발을 물러서고 만다. 그래서 그는 조금은 소심한 미달이다. 이런 미달은 문득 우리에게 어린왕자에게 한 사막여우의 말을 생각나게 한다.
참을성있게 서로를 길들이지 않으면 우리는 조금도 더 가까워질 수 없어, 꽃이 너에게 소중하게 된 것은ㄹ 그 꽃을 위해 소비한 너의 시간들 때문이란다.
반년 전 어느 날 미달이는 혼자가 되었다. 쓸쓸한 그의 눈빛으로 우리는 그의 가족, 그와 함께했을 이름 모를 사람들에 관한 그 어떤 기억들을 짐작할 뿐이다. 그는 이제 그를 행복하게 했을, 아니 어쩌면 더 슬프게 했을지도 모를 그 어떤 사람들에 관한 기억들로부터 떠나 황금산 속에서 머물고 있다.
산에 사는 미달이가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온 몸을 덮는 털로도 감출 수 없는 앙상한 갈비뼈나 굶주림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것은 외로움이었을 것이다. 쓸쓸한 미달의 눈빛이 그리 말한다. 앞에 보이는 사물을 바로 쳐다보지 않고 멀리 사물의 뒤쪽을 건너다보는듯한 그의 눈빛이. 미달은 그가 선택한 황금산이란 영역과 거기서 누리는 값비싼 자유를 포기하지 않았다. 다른 어떤 소중한 것과도 바꾸지 않았다.
밤새도록 부시럭거리며 깊은 잠을 들지 못하게 하는 성가신 산속의 새 가족들, 털가죽을 뚫고 뼛속까지 젖게하는 차가운 밤이슬, 한줄기 별빛조차 허용하지 않는 숲속의 짙은 어둠도 미달을 결코 마을로 다시 돌아가게 하지는 못하였다.
매일 아침 마음씨 좋은 몇사람의 지금동 아주머니들이 미달이 좋아하는 먹을거리와 물을 들고 산을 오른다. 우리 모두는 매일 아침 그의 산에 입산을 허락해주고 말없이 반겨주는 미달을 고맙게 생각한다. 오늘은 그간 산의 주인에게 눈인사만 해오던 필자도 한 조각 빵을 들고 그의 앞에 서 본다. 그러나 먹을 것을 앞에 두고도 미달은 쉽사리 다가오지 않고 짐짓 딴전을 피우는듯한 모습을 보인다. 마음이 조금 아파온다. 먹이를 내어놓은 필자가 몇 발짝을 물러난 뒤에야 다가와 조심스레 입을 대어본다. 미달이 식사를 마친 뒤에 산을 내려가는 필자를 미달이 멀찌감치 뒤따라 내려온다. 산 어귀 황골 약수터쯤에서 필자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발길을 돌리지 않는 미달이.
미달은 마을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사람들은 산에 남은 미달의 모습을 돌아본다.
이제 미달은 따가운 여름 햇볕, 차가운 밤이슬을 피할 어느 바위 밑이나 다른 동물 가족들이 있는 동굴 속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그를 미달이라 불렀을까? 온달·서달·추달은 용맹스러운 고구려 장수들의 이름이었을 터인데….
그래, 어쩐지 미달은 늠름해보였어! 먹을 것 앞에 비굴하지 않았고 등산객이 던지는 몇 마디 인사에 가볍게 꼬리를 흔들지 않았어!
미달의 모습에서 우리는 용맹스러운 고구려의 장수를 본다.
가난하지만 기품을 잃지 않는 조선 선비의 모습을 본다.
"그래! 미달공! 그리고 미달선비! 밤사이 황금산에 내리는 아름다운 별빛이 그대와 함께 하기를. 그대가 택한 자유, 그대가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그대에 대한 사랑, 그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잊지 마시게! 그리고 내일 아침도 그대의 산에 입산을 허락해 주시게나! 아참! 미달공! 그리고 내일 아침은 내가 그대에게 한발 더 다가가더라도 물러서지 마시게 제발. 그리고 잠시 동안만이라도 그대의 등에 나의 손을 얹는 걸 허락해 주게." 친구의 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