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신정(인천대학교 국어국문과 교수)
[경인일보=]"휴가 다녀오셨습니까?" 해마다 여름이면 흔히 주고받는 인사말이다. 주로 가족, 친지 단위로 휴가를 가고 여름 방학이 짧은 한국의 특성상, 7월말에서 8월 초순에 이르는 기간은 여름휴가의 절정을 이룬다. 지난 주말 광복절 연휴를 보낸 지금, 막바지 휴가철을 남겨 놓고 있다.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는 피서지 행렬은 실상 백년이 채 안 된 근대적 풍경이다. 1913년 조선 제1호 해수욕장인 부산 송도해수욕장 개장에 이어 인천 월미도, 몽금포 해수욕장, 당시 조선 거주 외국인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휴양지였던 원산 송도원 해수욕장 등은 기차로 대표되는 근대적 교통수단에 의해 개발된 여름휴가 명소였다. 치료를 위한 해수욕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해수욕복'을 입고 즐기는 오락과 여흥은 가히 새로운 풍경이었다. 대성황을 이룬 그 광경에 대해 만화가 안석영은 "소위 해수욕이라는 게 구정물 속에서 맨살 부비는 것이다 입으나마나한 속속뒤리 다-비최이는 해수욕복을 입고"라고, 조소어린 스케치를 남기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운행을 시작한 피서 열차는 70년대 말 승용차 바캉스족의 등장으로 불황을 맞이하기 전까지 해마다 초만원으로 달리고 또 달렸다.

여비가 없어 그 행렬에 낄 수 없었던 사람들이 다수였을 것이다. 20~30년대, 그들은 왕복 버스 삯 십전이면 갈 수 있는 '피서 여행'을 떠났다. 한강인도교다. 경성 최고의 명소에 매달린 채 사람들은 하늘로 치솟는 불꽃놀이와 강바람에 취해 더위를 잊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왜 우리는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 어디론가 꼭 '떠나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일까. 안석영은 경성의 도시 공간 변화와 가옥 구조를 통해 그 일단을 설명한다. 경성에 집은 늘어났지만 조선 사람의 집은 오히려 '오그라드는' 식민지 도시의 상황, 그 집마저 나무 하나 심을 뜰 없이 정체불명의 형태로 지어진 '근대 개량' 주택에서 폭염을 피할 방도를 마련하기는 어려웠다. 여름날, 집에서 휴식을 취할 수 없었던 사람들은 휘황찬란한 도심의 스펙터클에 취해 스스로 스펙터클의 일부가 되었다.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 점차 휴식 공간을 잃어 가는 도시 환경, 여가 산업의 거대 자본화, 지역 개발이 서로 맞물리면서, 매해 여름 휴가 강박증은 슬며시 찾아와 되풀이되었다.

휴가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또 하나의 풍경이 있다. 몇 년 전 화제를 모았던 카드 회사의 광고 카피,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가 연상시키는 장면이다. 직장 업무를 완벽하게 수행한 뒤, 날렵한 스포츠카를 타고 낯선 풍광 속으로 뛰어드는 젊은 직장인의 모습은 부러움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하지만 결코 아무나 '떠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직 '열심히 일한 당신'만이 떠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고 있기에, 그리고 그 때의 '일'이란 적정 임금으로 보상받거나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므로, 안타깝게도 열심히 일할 조건이 되지 않았던 당신, 열심히 일했으나 충분히 보상받지 못했던 당신들은 그저 먼 나라의 풍경쯤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휴가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휴가, 특히 여름휴가란 숨가쁘게 돌아온 한 해의 반환점에서 일상의 묵은 더께를 훌훌 털어내고 맞이하는 몸과 마음의 이완(弛緩)의 시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일과 휴식으로 반복되는 생활의 리듬감, 도시적 일상에서 상실해가는 자연성, 그리고 '놀이하는 인간(호모 루덴스)'의 본성을 회복하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여름휴가 기간에 진정으로 누려야 하는 즐거움이 아닐까. 그때에 우리는 과열된 소비와 과시문화의 틈바구니에서 또 하나의 '볼거리'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즐기고 누리는 휴식의 주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경제적 이유로, 미래에 대한 부담감으로, 지금 당장 손을 놓기 어려운 바로 그 일 때문에 휴가를 망설이는 당신, 눈치 보지 말고 떠나라! 유명 휴양지가 아니어도 좋다. 도심 한 모퉁이, 집안 한 구석에 나만의 장소를 숨기는 일도 충분히 '떠나는' 일이 되리라. 올 여름 변변한 벌이도, 눈에 띄는 성과도 얻지 못한 당신, 그러나 여름내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위해 소중한 땀을 흘린 당신에게 휴가는 스스로 그 노고에 보답하는 가장 좋은 선물이 아닐까.

휴가 잘 다녀오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