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준구 (논설위원)
[경인일보=]찬바람이 난다는 처서가 지난 지 한참이고 태양이 작열하던 찜통더위도 한풀 꺾여 아침저녁으로 제법 서늘하다. 과일들이 무르익고 얼마 지나지 않으면 황금들녘이 펼쳐져 농부들의 마음도 푸근해질 때다. 계절이 바뀌는지도 모르면서 일상에 파묻힌 이들도 많을 테지만 그래도 찬바람에 모기는 쫓겨가고 귀뚜라미가 바쁘게 오고 있다. 인간사는 반칙이 많아도 자연의 섭리는 반칙이 거의 통하지 않는 모양이다.

매년 이맘 때가 되면 꼭 등장하는 말이 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던가? 덥지도 춥지도 않으니 책 읽기에는 딱 맞다. 책을 많이 읽어 마음을 살찌우자는 것이다. 가을은 과연 '독서의 계절'일까? 그러나 실제로는 통념과 달리 1년 중 책이 가장 안 팔리는 계절이다. 여름과 겨울에 오히려 책이 15%가량 더 팔린다고 한다. 판매량만 놓고 보면 의외로 여름과 겨울이 독서의 계절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책을 안 읽는 계절인 가을이 왜 독서의 계절이 됐을까 하는 원초적인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일설에 따르면 농경문화의 관습에서 유래했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가을에 독서를 장려하기 위해 쓰이는 사자성어 '등화가친(燈火可親)'은 중국 당나라의 대문호 한유가 아들에게 책읽기를 권장하기 위해 지은 시 '부독서성남시(符讀書城南詩)'에 등장하는 한 구절인데, 수확기 먹거리가 풍성한 가을은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공부하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게다가 너무 춥지도 덥지도 않은 기상적 요인도 '가을=독서의 계절'로 규정된 이유로 꼽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날씨가 너무 좋아서 너도나도 산으로 들로 놀러 다니느라 책을 볼 틈이 없다고 군색한 변명마저 늘어놓는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나름대로 이름을 남긴 사람들은 대부분 책을 가까이 했다. 얼마 전 서거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3만권의 장서를 소장했다.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하다"며 "책을 읽기 위해 감옥에나 한 번 더 가야 할 모양"이라고 말했다고도 한다. 감옥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책을 보며 일본인 간수에게 '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일일부독서구중생형극)-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친다'를 외쳤던 안중근 의사다.

대통령 당선 이후 첫 휴가를 떠났던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휴가지에 5권의 책을 가져가 독파했다고 한다. 이집트 원정길에 나선 나폴레옹은 1천권의 책을 싣고 갔다. 세계 최고의 부호 빌 게이츠는 자녀들에게 컴퓨터 대신 책을 사줬다. 하버드대 졸업장보다 독서습관이 더 중요하다는 그다. 에디슨은 디트로이트시의 도서관 책을 모두 읽어댈 정도의 독서광이었다.

서울의 한 국문학과 교수는 이제 더 이상 대학생들로부터 책을 읽는 모습을 보는 것은 포기했다고 말한다. 소위 명문대, 그것도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학생들에게 어떤 책을 읽었는가 물어보면 고작 인터넷에 떠도는 소위 베스트셀러라는 책 이름 한두 권 대는 것이 고작이요, 그나마도 안 읽은 학생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청소년들마저도 입시공부에 찌들어 교양서적과는 담을 쌓은 지 오래다. 나라가 이만큼 발전한 것이 책의 힘이요, 교육의 힘인데, 이러다가 책맹(冊盲)국가가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일본의 한 언론인은 한국이 일본을 따라오지 못하는 이유로 독서량의 차이를 들었다. 일본인들은 일반 서적은 물론 반신욕 애호가들을 위해 '물에 젖지 않는 책'을 펴낼 정도다.

독서는 단순한 지식뿐 아니라 삶에 대한 지혜와 통찰력을 갖게 해 준다. 편안함을 선사하고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준다. 천재적인 영감으로 새로운 것을 발명하고 창조한 사람들은 모두 책에서 동기를 얻었다고 하지 않는가.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이 한결같이 다독가라는 점도 이미 증명됐다. 이번 가을에는 정말로 진정한 '독서의 계절'을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