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어느 봄날/ 나에게 그려준/ 순정만화의 주인공처럼
맑게 밝게 순결하게 살아온 영희// 수녀님의 축시를 받기 위해
결혼을 할까보다 하고/ 웃으며 고백했던 영희/…중략…
잘 가 영희야,/ 그리고 사랑해/ 나직이 말하는 나의 곁에
어느새/ 꽃을 든 천사로/ 꽃을 뿌리는 영희//
오늘은 영희를 생각하며/ 바닷가에 나가/ 영희의 세례명인
마리아를 크게 부르겠어요// 수평선에 눈을 씻으며
늘 푸른 엄마 성모님께/ 영희를 잘 부탁한다고 기도할게요
이 세상에 영희를 닮은/ 희망의 사람들이 더 많아져서
아름다운 세상이 올 수 있도록/ 영희와 함께 기도할게요, 안녕
- 영희를 보내며/이해인
암투병 중인 이해인 수녀가 쓴 최근 암으로 세상을 떠난 故 장영희 서강대 교수에 대한 애도시다. 시인은 아름다운 삶을 살다간 슬픔을 전하고 있다. 장 교수는 두 발과 오른쪽 팔이 마비된 소아마비 1급 장애를 딛고 일어선 수필가, 문장가로 '문학의 숲을 거닐다', '내 생애 단 한번' 등 에세이집을 통해 독자들에게 희망을 안겨준 작가였다. 아포리즘으로, 소박한 칼럼으로, 독자와 소외된 이웃들과 나눈 장 교수의 삶은 잃어버린 따스함을 일깨워 힘겨운 장애를 씩씩하게 딛고 일어선 영문학자로 많은 독자들을 성찰하게 했다. 루카치는 길은 끝났지만 여행은 다시 시작된다고 했다. 길을 나서는 순간부터 여행은 시작의 발걸음이다. 위대한 영혼을 잃고 방황하는 거리는 생명의 모태 한 알의 씨앗이 사라진 아픔처럼 마르지 않는 눈물의 샘을 닦아내어야 한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은 지나가고, 기쁨도, 슬픔도, 고통도 소멸하고 만다.
박병두/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