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양식 (전 경주대 총장)
[경인일보=]'"여러분의 고객은 누구입니까?" 라고 물어보았다. 지난해 3월 나의 새로운 고객이 되었던 대학생들에게 다소 황당하게 느껴지는 질문을 했다. 의아해 하며 나의 젊은 고객들은 말했다. "우린 아직 고객이 없어요. 미래의 고객은 있겠지만…" "현재 우리의 고객을 굳이 말한다면 부모님이나 교수님이 되나요?"'

그런데, 한참 뜸을 들인 뒤에 나의 매우 도전적인 한 고객이 소리쳤다. "나 아닌 모든 사람이 나의 고객인 것 같아요"라고. 고민 끝에 뱉은 자기의 대답이 꽤 만족스러운 듯 조금은 자랑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

"그래요? 그럼, 그 고객 명단에서 빠져버린 '나'는 어떻게 하고?" "에이, 총장님도 참! 그럼 나도 그 누군가의 고객이 되면 되지 않아요?"

그렇다. 언젠가는 운 좋게 찾아오거나 어쩌면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를 누군가의 고객이 될 기회를 마냥 기다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나의 고객명단에서 조차 빠져버린 엄청나게 소중한 나를 오늘 나의 새로운 고객 명단에 올려보는 것은 어떨까?

숨가쁘게 돌아가는 일터에서도 집에 있는 가족생각을 한 순간도 잊는 일이 없으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불편한 일들을 모두 속으로 삭이면서 세계평화부터 쇠고기 개방, 신종플루까지 스트레스란 스트레스는 빼놓지 않고 다 받는, 그래서 어쩌면 조금은 슬프기까지 한 불쌍한 고객.

그러나 하릴없이 갑작스레 걸려온 옛 친구의 전화 때문에 문득 보고 싶어진 또 다른 친구에게 밤늦도록 전화를 걸고, 1주일에 한번쯤은 동네 다방의 커피가 아닌 헤이즐넛, 카푸치노, 에티오피아 커피든 뭐든 이름만큼이나 맛도 어쩐지 다를 것 같은 그런 한 잔의 커피를 용기 있게 시도해 보는그런 고객.

이름 모를 고상한 클래식 음악에 가슴 깊은 감동을 받기도 하지만 이따금씩은 동네 노래방에서 가족, 친구들과 함께 목청껏 고래고래 소리 높여 부를 만한 비장의 노래 한곡씩은 숨겨두고 있는 그런 평범한 고객.

가족과 친구를 끔찍이도 사랑하지만 그 간단한 것을 표현하는 것이 도무지 서툴러 이따금씩은 난처한 지경에 빠져버리기도 하는 그런 고객.

길섶에 핀 이름 모를 들꽃의 아름다움에 취해 문득 가던 길을 멈추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 문득 시인이 되어버리는 고객.

새벽을 깨우는 산새들의 지저귀는 소리에도 지난밤의 침묵을 못내 버리지 못하는 새벽 산의 고요한 여명에 공감하는 고객.

눈감고도 걸을 정도로 익숙해진 동네 어귀에서 서산에 길게 걸린 저녁노을 바라보며 지금은 보이지 않는 사라진 사람들, 땅속에 묻혀버린 돌아오지 않는 역사에 가슴 아파하는 고객.

오늘을 사는 자신을 가장 소중한 고객으로 여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자랑스러운 고객에 대한 깊은 사랑과 존경 없이는 그 어떠한 고객을 단 하루도 결코 행복하게 할 수 있다고 우리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날 누군가가 자꾸 미워지거나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비난하는 말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면 그건 어쩌면 요즈음 나란 고객에 대한 나의 사랑이 조금씩 옅어져 가고 있는 때문일 지도 모른다.

오늘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그 고객이 좋아하는 무언가를 해보자. 아주 작은 관심만 보여도 언제나 커다란 감동을 보여주는 그를 행복하게 할 작은 일을 시작해보자. 내 앞에 다가올 먼 미래의 이름 모를 고객을 생각하면서 오늘 가장 가까이 있는 그간 잊혀진 나의 이 사랑스런 고객을 다시 한번 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