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은 초자연적이고 초인과론적인 법칙을 지닌다는 점에서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이다. 인간에게 환상이 필요한 까닭은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현실을 지탱하는 모든 질서와 규칙, 나아가서는 도덕적 원리가 늘 심리적 안정감만을 주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개인을 거대한 사회에 종속시키고 때로 자유를 억압하는 결박의 끈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사회의 구조적 압력이 강해질수록 환상에 대한 동경은 강화된다. 환상이 책임감으로부터 벗어난 미묘한 즐거움과 억압된 감정을 이완시켜 주기 때문이다. 현실의 결핍을 위안해주고 보상해주는, 혹은 초월하게 하는 모든 환상은 우리의 의식을 사로잡으며, 그 사로잡힘에 적극적으로 반응한다면 우리는 새로운 삶의 의미 체계를 형성하는 데까지 나아가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환상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억압으로부터의 일탈을 촉진시키고 존재 전환의 힘을 제공해 줄 수 있는 강력한 작용력을 갖는다.
일상의 규범과 질서를 흔들어 놓는 것이 환상의 매력이라면 이러한 매력은 현실을 비웃고 부정하며, 때로 그것을 초월하고자하는 힘을 내포한다. 환상의 가치는 삶의 고착된 한계를 벗어나게 하는 데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환상문학 이론가 로즈마리 잭슨은 환상을 전복의 매개물로, CS루이스는 매혹적 인식의 자극제로, '반지의 제왕'의 저자 JRR 톨킨은 즐거움의 제공처로 그 효과와 가치를 설명한다.
그러나 환상이 언제나 이 같은 가치를 지니는 것만은 아니다. 거짓 환상은 망상을 낳는다. 이 세계는 동화책에서 읽었던 풍요로운 환상과 신비한 모험의 세계가 내면의 긍정적 에너지로 바뀌기도 전에 동화의 순수한 세계를 다른 환상으로 대체해버린다. 현란하게 포장된 물질적 환상이 바로 그것이다. 이 물질적 환상은 모두 돈으로 환원된다. 그리고 물질적 환상의 정점에서 불멸의 왕자와 공주가 부활한다.
어린 시절 읽었던 왕자와 공주의 이야기보다 더 생생한 진짜 왕자와 공주가 현대적 감각의 명품 패션을 걸치고 눈앞에 나타난다. 그 왕자와 공주는 재벌 2세이거나 재벌 2세의 시선을 사로잡은 평민 출신의 젊은 남·여이다. 왕자와 공주의 세련되고 당돌한 매너, 그들이 거주하는 저택, 황홀한 식탁, 거기에 빠질 수 없는 안타까운 로맨스, 그리고 재벌 2세의 삶으로 편입해가는 평민 계층의 어설프고도 순진한 행동들까지.
이 고정된 설정은 무수히 반복·재생산되어도 결코 사망에 이르지 않는다. 아니 압도적 힘을 발휘하는 데 성공한다. 똑같은 설정에 늘 호기심으로 반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간명하게 말해 우리들이 왕자와 공주의 삶을 욕망하고 선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 또한 누구나 안다. 그럼에도 현실과 환상의 괴리감을 부추기는 거짓 환상이 거짓인줄 알면서도 그것에 대한 선망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 그 불은 결핍의 씨앗이 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그늘지게 만든다.
결핍의 심리는 언제나 그것을 대체해줄 무언가를 찾게 만든다. 거짓 왕자와 공주의 세계로부터 생겨난 결핍감은 무엇으로 보상되는가? 답은 어렵지 않다. 그들과 닮은 물질적 황홀의 세계를 소유하는 것이 가장 손쉬운 보상이다. 이 소유의 욕구에 부응해서 수많은 상품들이 진열된다. 그것은 사람들을 유혹하고 충동하고 기만한다.
우리의 미래인 소년과 소녀들이 꿈꾸는 환상의 실체는 무엇일까? 우리는 어떻게 물질적 황홀에 대항할 수 있는 진정한 꿈과 환상을 생성시킬 수 있는가? 오늘도 누군가는 거짓 왕자와 공주의 탄생을 도우며 음험한 웃음을 웃고 있을 이 세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