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산업 종사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중시하는 의견도 있다. 실패의 위험은 사회나 주주들에게 돌아가고 이익은 자신들에게 귀속되는 주인-대리인 관계의 문제가 위기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투자은행과 파생상품에 대한 느슨한 규제가 문제였다는 지적도 많았다. 미국의 쌍둥이 적자가 초래하는 글로벌 불균형을 위기의 원인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미국정부와 소비자는 과잉소비를 하고 중국 등의 국가들은 미국에 수출해 번 돈을 미국에 국채 등의 형태로 재투자해 미국의 과잉유동성과 부동산 거품을 조장했다는 것이다.
위기의 원인에 대한 이 모든 지적들은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이 밖에도 간과된 중요한 요인이 있다. 정보의 불완전성이 그것이다. 이번 위기 전까지만 해도 거시적으로 시장은 충분히 합리적이며 일부 불균형이 발생할 경우 정부의 개입으로 경기변동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보는 견해가 주류 거시경제학자 사이에서는 지배적이었다. 시장은 효율적으로 자원배분을 한다고 여겨지지만 여기에는 많은 전제가 필요하다.
그 중의 하나가 정보의 정확성이다. 그러나 미래에 관한 한 정보의 정확성은 한계가 있다. 부동산과 주식의 가격은 미래의 수익흐름을 현재의 시점으로 평가한 것이다. 그런데 본질적으로 미래의 경로는 불확실하게 마련이고 지금 우리의 행동에 의해 미래가 바뀌기도 한다. 따라서 부동산과 주식시장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급격한 변동을 겪기도 한다. 그러나 위험 또는 불확실성의 존재가 시장의 비효율성을 바로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불확실성과 위험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위험에 대한 태도가 다른 수많은 경제주체가 있고 확률도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면 시스템 전체가 갖는 위험은 별로 없다고 할 수 있다. 어느 손님이 잭팟을 터뜨렸다고 해서 카지노회사가 무너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월가의 금융산업종사자들은 다양한 금융파생상품으로 금융거래의 위험을 분산시킬 수 있고 그 상품의 잠재적 위험도 정교한 금융공학의 힘으로 측정 가능하다고 믿었다. CEO들은 그런 금융상품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위험이 어떤 방식으로 측정되는지 구체적인 지식도 없으면서 자신들의 천문학적인 보수는 과감한 결단과 혜안의 대가라고 믿었다.
그런데 뭐가 문제였을까? 문제는 위험이 있더라도 위험의 크기를 아는 것과 아예 모르는 것은 다르다는 데 있다. 즉 확률함수를 아는 경우와 모르는 경우는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도박을 하더라도 눈을 감고 흰 공과 검은 공이 일정 비율로 섞여 있는 항아리에서 흰 공을 꺼내야 하는 경우와 비율을 모르는 상태에서 흰 공을 뽑아야 하는 경우는 게임의 룰이 같을 수 없다. 월가의 불장난은 모르는 걸 안다고 착각한 것이다. 적어도 미래에 관한 한 불확실성을 정확히 측정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며 따라서 경제학의 예측능력과 시장의 합리성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여기서 다시 도덕적 해이가 위기를 증폭시키는 측면을 주목해야 한다. 항아리 안의 흰 공과 검은 공의 비율을 모르더라도 돈 대는 사람은 따로 있고 자신은 흰 공을 꺼내면 10억원, 검은 공을 꺼내면 5억원의 수수료를 받는다면 그런 짓을 반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투자은행을 육성하고 금융산업의 규제를 완화하면 금융산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것이라는 기대는 근거가 희박해 보인다.
우연인지는 모르나 미국의 예를 보면 20세기 초와 1980년대 이후에 금융산업의 규제완화가 크게 진전되었는데 소득불균형이 이 시기에 확대되었고 경제위기가 뒤를 이었다. 결론은 금융산업이 중요하지 않다거나 규제완화가 부작용만 가져온다는 것이 아니라 잘 모르는 길은 신중하게 가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