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오전 10시 인천시 중구노인복지관 2층 소강당. 인상 푸근한 40대 중반의 여성 강사가 마이크를 잡고 있다.
한자를 문장으로 조합시킨 뒤 이를 따라 읽도록 유도하자 60~90대의 머리 희끗한 어르신들의 목소리가 교실에 울려 퍼졌다. 배움의 열기가 여느 학교 못지않다. 강단에 선 이는 박경옥(46·사진)씨. 학생들의 며느리뻘 되는 박씨는 교편 경력만 20여 년이 다 된 베테랑 '한자 지도자'다.
박씨는 1980년대 중반 막 고교를 졸업하고 인천의 모 의류공장에서 첫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운명을 바꿔 놓은 것은 직장내 동호회에서 우연히 접한 한자 교실이었다. 1986년부터 한자와 서예 공부를 병행했고 2년 뒤 직접 동료들의 강의까지 맡았다. 이어 1992년 결혼과 함께 직장을 그만둔 박씨는 작은 공부방에서 학생들에게 한자를 가르치면서 미래를 수정해 나갔다.
2001년부터는 간석·삼산초교에서 방과 후 학교를 담당했지만 월급은 변변치 않았고 가정에 소홀하기 일쑤였다. 이때 남편이 든든한 버팀목이 돼 줬다. 남편이 아이들을 지극 정성으로 돌보며 엄마의 빈자리를 메워준 것이다. 뒤늦은 학업에도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줬다. 덕분에 2002년과 2005년에 방송통신대와 성균관대에서 각각 학사, 석사 학위를 따냈다.
박씨는 지금의 보금자리에 송하서예·한문학원이란 간판을 내걸었다. 별도 학원이 아닌 집 한쪽에 교습공간을 마련한 이유는 90세, 졸수(卒壽)가 다된 시아버지를 돌봐야하기 때문이다. 거동이 불편한 시아버지 곁을 한시도 떠날 수 없지만 전혀 불평은 없다.
중구노인복지관에서 박씨는 '에코 실버(Echo Silver)' 프로그램을 3년째 진행하고 있다. 어르신들이 겪는 외로움을 교육으로 해소하자는 취지로 시작했다. 자격증을 취득하면 이를 재취업 또는 자원봉사에 활용할 수 있다.
매주 화·목요일 오전 10시부터 2시간 동안 운영되는 이번 강좌는 1년 일정으로 올해 70여 명의 수강생이 등록했다. 박씨의 가르침에 힘입어 국가공인 자격증을 취득한 이들은 1급 2명, 2급 5명, 3급 20명으로 지역아동센터 등 지역사회 곳곳에서 한자를 전파하고 있다.
내 부모를 모시는 마음으로 학생을 대한다는 박씨는 "할아버지·할머니께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심어주는 게 우선 과제"라며 "한자 교육은 대외적 활동에서 강한 의지를 불어넣는 우수한 수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