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환 (한글문화연대대표·방송인)
[경인일보=]사회복지사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강의를 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사회복지사들 앞에서 과연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까? 사회복지에 관해 문외한인 사람이 감히 그런 곳에 가도 될까? 그동안 참여했던 봉사활동에 대한 얘기라도 해야 할까? 고민하던 차에 보건복지가족부에서 노숙인과 부랑인을 대신할 법정 용어로 하필이면 '홈리스'를 쓰려고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잘 곳이 없어 한데서 잠을 자는 이들을 우리는 노숙인이라 부른다. 전에는 노숙자라고 불렀었는데 '자'가 어감이 좋지 않았는지 아니면 그 이상으로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어느 틈엔가 노숙인이 되어 있었다. 노숙인이 잘 곳이 없어 단지 한데 잠을 자는 사람이라면 부랑인은 거처도 직업도 없이 떠도는 사람을 뜻한다. 부랑인도 과거에는 부랑자였다.

그러고 보면 '자'를 '인'으로 바꾸어 사용하는 말이 꽤 있는 것 같다. 장애인도 과거에는 장애자였다. 그런데 요즘에는 장애인도 적절치 않았는지 '장애우'라는 말을 쓰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선거에서 당선되었을 때 며칠 동안은 당선자라고 했던 것 같은데 어느 날부터인가 '당선인'으로 말이 바뀌었다. 실제로 '자'가 그렇게 부적절한 말인지 모르겠으나 '자' 붙은 말을 기피하는 것이 요즘 경향인 듯하다. 그런데 '응시자', '합격자', '탈락자', '우승자'는 왜 '응시인', '합격인', '탈락인', '우승인'이라고 하지 않을까? '기자'는 왜 '기인'이라고 하지 않을까?

괜한 시비를 건다고 나무랄지 모르지만 과연 '자'를 '인'으로 바꾼 것이 적절한 처사였는지 의문이 들어 그렇다. 물론 '자'가 태생적으로 질이 나빠서 그냥 두면 우리 언어생활이 험악해지고 특히 청소년들의 정서에 나쁜 영향을 주는 말이라면 모르지만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든 건 아닌가 하는 의혹이 드는 때문이다. '자'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당사자들을 존중해서 그 '자'를 '인'으로 고친 정상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왠지 필요 이상의 일을 해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아니 시작함만 못한 결과가 돼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부랑인과 노숙인을 대신한 말로 '홈리스'라는 말은 적절할까? 부랑인이나 노숙인을 대체할 적당한 말을 찾기 어려웠겠지만 한마디로 어불성설이고 두 마디로 언어도단이다. 특히 대체 용어를 고르는 과정에 참여한 사회복지사들이 '홈리스'를 선택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정말 당혹감을 감추기 어려웠다.

오랫동안 써온 부랑인과 노숙인을 단지 어감이 나쁘다는 이유로 일시에 폐기처분하려는 이유도 설득력이 없지만, 생각도 고민도 해보지 않고 적절한 우리말이 없다며 더욱 알쏭달쏭한 외국어를 갖다 붙이려는 몰지각도 마뜩찮다.

필요 이상으로 외국어를 추종하고 우리말을 홀대하는 태도는 반드시 짚어봐야 할 문제이다. 홈리스보다는 두 말을 통합하는 의미로 '노숙인'이라고 하면 되고 굳이 새로운 말을 쓰고 싶다면 '무숙자(인)', '길잠꾼', '길거리족' 같은 말들도 고려해볼 만하다.

Hug AIDS 온라인 캠페인은 무엇인가? 펀(FUN) 경영으로 웜(WARM) 서비스의 닻을 올려야만 하고, 첨단 u-Health 서비스를 해야만 안심할 수 있을까? 혹 무슨 말인지조차 몰라 참여도 못하고 도움을 요청하지도 받지도 못한다면 이것을 사회복지를 위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노인보호구역이라는 말을 두고 '실버존'이라는 말을 쓸 필요가 없으며 시각장애우를 위한 '보이스아이' 같은 말을 갖다 붙일 게 아니라 '인쇄물음성출력기'라고 해야 누구든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한글 사회복지'라는 말이 생소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쉽고 편한 우리말과 한글을 사용하는 것이 사회복지를 실현하는 방법 중의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