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동권 (경인교육대학교 총장)
[경인일보=]우리나라 학생들이 각종 국제학업성취도비교평가에서 높은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주관하는 2003년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한국은 문제해결력 1위, 읽기 2위, 수학 3위, 과학 4위를 차지하였다. 3년 후인 2006년 PISA의 결과에서도 과학 성적이 2003년에 비해 약간 낮아지기는 하였지만, 다른 영역은 여전히 최고 수준을 유지하였다. 국제교육성취도평가협회(IEA)에서 주관하는 국제학력평가인 TIMSS에서도 2003년 한국은 수학 2위, 과학 3위를 기록하였으며, 2007년에는 수학 2위, 과학 4위를 차지하였다.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랑스러움의 한 구석을 씁쓸하게 하는 또 다른 평가 결과가 있다. 요컨대 한국 학생들의 성취도는 높지만 흥미나 자신감 등의 정의적 영역이 매우 낮다는 것이다. 2003년 PISA에 참가한 40개국 중에서 한국 학생들의 수학에 대한 흥미는 31위, 동기는 38위를 기록하였다. 같은 해 TIMSS의 교과에 대한 자신감에서도 수학은 38위, 과학은 25위로 매우 낮게 나타났다. 높은 학업성취도를 고려할 때 이례적으로 낮은 흥미와 동기를 보이고 있다. 이는 학생들이 교과에 대한 흥미나 내적 동기 없이 외적 요구나 압력에 의하여 학습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학습에 대한 흥미와 동기가 부족한 학생들이 높은 성적을 얻으려고 하다 보니 독특한 학습방식이 형성되는데, 그것이 소위 '벼락치기'이다. 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체화된 학습법이라 할 수 있다. 평소에는 공부를 하지 않다가 시험을 며칠 앞두고 단기간에 집중력 있는 학습을 함으로써 높은 성적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벼락치기'인데, 학습에 대한 동기와 흥미가 부족하면서 좋은 성적을 얻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이것이 합리적인 학습법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벼락치기 학습은 상당한 긴장과 인내를 요구하는 과정으로 집중력과 체력의 바탕 위에서 가능하기 때문에 나이 든 사람들이 이를 행하기에는 적잖은 어려움이 따른다.

많은 사람들이 벼락치기 학습에 길들여지게 된 배경에는 경쟁적인 시험 위주의 학습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시험결과에 따른 칭찬 또는 질책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학생들로서는 자신의 흥미나 관심을 고려하기 전에 시험을 잘 보아야겠다는 경쟁적 심리가 생기게 된다. 하지만 흥미나 관심과 무관한 시험 준비 위주의 학습이 즐거울 수 없고, 그러다 보니 평소 공부보다 벼락치기 학습에 더욱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벼락치기 학습은 중간고사, 기말고사, 수능시험, 취업이나 승진시험 등 각종 시험 이벤트에 의하여 의미가 부여된 이벤트성 학습으로, 학습을 강요하는 더 이상의 시험 이벤트만 없어지면 학습 역시 그 의미가 없어지는 그러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학습량을 보여주는 학습곡선은 학창시절, 특히 대학 입학 직전에 최고조에 이르렀다가 그 후 감소하기 시작하여 취업 이후에는 급속히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상당수의 국민들이 이른바 '학습 조로증(早老症)'에 걸려 있는 셈이다.

이와 같은 학습곡선은 배움이 주로 학교에서 일어나는 학교중심 시대에는 어울릴 수 있지만, 학교는 물론 학교 밖에서도 꾸준히 학습생활을 영위해야 하는 평생학습시대에는 걸맞지 않다. OECD 보고서는 2050년이 되면 지식이 급증하여 현재 지식의 1%밖에 사용할 수 없게 될 것임을 제시하고 있다. 이처럼 지식의 생성과 소멸이 급속하게 일어나는 시대의 학습활동은 학창시절뿐 아니라 학교 졸업 이후에도 꾸준히 유지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벤트성 벼락치기 학습자가 아니라 학습을 생활화할 수 있는 자기주도적 학습자가 되어야 한다. 자기주도적 학습자를 기르는 데는 초등학교 시기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는 본격적인 학습이 시작되면서도 대입 준비의 압력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는 점에서, 학생들에게 자신의 관심과 흥미에 기초하여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과 태도를 길러주기에 더 없이 좋기 때문이다.

따라서 초등학교 교사와 학부모들은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져 학생들의 올바른 학습습관 형성을 위한 안내자가 되어야 하고, 특히 교육대학 학생들은 자신부터 훌륭한 학습자로 성장해나가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평생학습시대에 걸맞은 바른 학습문화의 정착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학습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