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 남동구의 한 아파트단지 슈퍼마켓은 매일 소성주 2짝(40개)을 냉장진열대에 들여놓는다. 18일 오전 11시 30분, 도매상이 가게에 왔을 때 진열대에는 소성주 2개만 남아있었다. 가게 주인 최미선(42·여)씨는 "작년보다 판매량이 두 배 이상 늘었다"고 말했다. /김용진기자 yjkim@kyeongin.com
[경인일보=김명래기자]인천막걸리(소성주)가 이마트와 서울막걸리라는 '두 마리 공룡'의 틈바구니에서 몸부림을 치고 있다.

소성주는 인천에서만 8개 매장을 운영하는 초대형 마트인 이마트에서는 판매가 안 된다. 여기에서는 서울 막걸리가 주류다. 서울막걸리는 서울 1천만 인구를 바탕으로 성장했다. 기술력과 유통시스템이 전국탁주제조업체 중 가장 앞선다는 평가를 받는다.

'건강주'라는 입소문을 타면서 최근 막걸리가 뜨고 있다. 막걸리를 찾는 대상도 다양해졌다. 아파트 상가에 막걸리가 등장한 대신 대학가에서는 지고 있다.

양조장 통합, 맥주의 등장, 외환위기 등 수십 년 동안 부침을 거듭한 인천막걸리가 일어서느냐, 주저 앉느냐는 새 국면을 맞았다.

■ 이마트의 높은 벽

정규성 인천탁주합동제조공장 대표는 대형마트와 편의점에 인천막걸리를 들여놓기 위해 최근 몇 년 동안 다방면으로 노력했다. '품질 개선만이 살 길이다'는 생각에 그는 외환위기 때 수억원대의 설비를 들여놓은 장본인이다. 품질 개선으로 '막걸리를 마시면 뒤끝이 안 좋다'는 편견은 어느정도 사라졌다. 문제는 유통망이었다. 아무리 좋은 막걸리를 만들어도 대형유통업체에 들어가지 못하면 말짱 헛것이었다. 각고의 노력으로 인천막걸리는 홈플러스와 롯데마트에 진입할 수 있었다. 또 GS25, 패밀리마트 등에도 일부 판매되고 있다. 그러나 이마트는 요지부동이다.

이마트 인천점 관계자는 "전국 이마트 124곳에 들어가는 물건은 모두 서울 본사에서 결정한다"고 말했다. 인천탁주도 이마트에 물건을 들이려고 서울본사에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러나 문을 두드릴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고 한다.

정규성 대표는 이마트 판촉과정에서 겪은 일만 생각하면 울화가 치민다. "이마트 본사 직원에게 들은 첫 마디가 '(TV, 라디오)광고실적이 있느냐'는 말이었습니다. 지역기업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었습니다. 물론 담당자하고 만나지도 못했습니다."

인천에서 막대한 이득을 취하는 이마트가 지역업체를 대하는 자세다. 전국 이마트 매장 중 인천의 이마트는 줄곧 매출액 최상층을 차지하고 있다.

■ 대학가에서 사라진 막걸리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대학축제가 열리는 5월이면 막걸리 공장에 일손이 부족할 정도로 바빴다.

1974년부터 인천탁주에서 일하는 송석만(57) 부장은 "인하대에서 축제가 열릴 때는 하루에 300짝(1짝에 20개)씩 배달했다"고 전했다. 당시 인천탁주합동제조공장이 하루 평균 3~4천 짝을 출고했으니, 그 10분의 1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고려대학교 안암캠퍼스 축제에도 인천막걸리가 들어간 적이 있었다. 당시 고려대 이철호 교수가 '막걸리를 장기간 보관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한 논문을 냈는데, 이 교수와 인연이 닿아 인천막걸리를 서울의 대학생들에게도 선보일 수 있었다고 한다. 고대 축제기간 매일 960㎖ 팩 막걸리를 화물차에 가득 싣고 안암동까지 배달했다.

대학 축제와 함께 이어진 '막걸리 특수'는 1980년대 중반부터 시들해졌다. 총학생회가 주관하는 축제에 맥주회사가 후원사(스폰서)로 들어와 물량공세를 펴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 인천 막걸리의 대표 브랜드, 소성주

1974년 인천지역의 11개 탁주양조장이 하나로 합쳐 인천탁주합동제조공장을 만들었다. 정부가 '1지역 1탁주공장' 정책을 펴 주세를 효율적으로 거둬들이려고 내린 조치다.

11개 탁주 양조장 중 대화주조의 역사가 가장 깊다. 1910년대 일본인이 만든 것을, 정규성 대표의 할아버지(정대현)가 해방 이전에 인수했다고 한다. 대화주조 다음으로는 창영동의 인천양조장이 긴 역사를 자랑했다. 2001년 특정지역 막걸리를 타 지역에서도 팔 수 있게 되면서 '막걸리 무한경쟁시대'가 시작됐다. 서울막걸리와 포천막걸리가 수도권을 비롯해 전국에 퍼지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수도권을 비롯해 전국 여러 지역의 막걸리 제조업체가 문을 닫았다. 인천탁주는 1990년대 말 컴퓨터 자동제어 설비를 도입했다. 대량생산 체제 속에서도 똑같은 맛을 내는 막걸리를 생산할 수 있게 됐다.

인천탁주는 1990년 쌀막걸리인 소성주를 개발해 출시했다. '소성'(邵城)은 인천의 옛 지명이다. 청색 병에 담긴 소성주가 인천탁주의 주력이다. 소성주는 생막걸리다. 균을 모두 죽인 살균탁주와 달리 효모가 살아 있다. 유통기한이 10일로 살균탁주(6개월)보다 짧지만, 맛은 더 좋다는 평가도 받는다.